北이 핵이냐 생존이냐 택하도록 안보국론 결집해야[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그는 북-미 핵협상 초기부터 북측 요구를 수용했다면 북핵 문제가 이처럼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제네바 합의 무산과 하노이 회담 결렬 등 북핵 문제의 주요 변곡점마다 미 강경파의 이데올로기와 오판으로 북핵을 억제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김씨 정권이 오로지 핵 개발의 시간을 벌기 위해 외교의 장에 나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북한은 애초부터 핵 개발과 외교적 합의라는 ‘이중 경로’를 채택했지만, 미국이 협상에 미온적이고, 합의도 깨버리는 바람에 핵 고도화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에 “북핵의 실체와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기울인 외교적 노력이 실패를 거듭해온 이유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쓰며 거들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북한이 그를 누차 초청한 의도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필자뿐일까. 객관적 분석이 아닌 북한의 입장, 소위 ‘내재적 접근법’으로 북핵을 바라보면 모든 책임은 미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자 당연한 수순이라는 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핵은 실제 사용 목적이 아닌 대미 협상용 수단이고, 핵·미사일 도발도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이벤트로 순화된다. 미국이 한국과 상의 없이 대북 군사행동에 나설 수 없고, 북한이 핵 개발 이유로 내세우는 ‘안보 우려’도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 영속화를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팩트’는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 동맹보다 민족을 앞세운 대북 유화기조의 진보정권에서 “북한의 핵은 자위적 수단이자 방어용” “5000개의 핵무기를 가진 미국이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무기를 갖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나” 등 일부 정치인의 발언 논란이 벌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필자는 본다.
북핵 위협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재적 접근을 넘어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경찰 대신 납치범을 편드는 현상) 관점으로까지 오독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인식은 ‘더러운 평화가 이긴 전쟁보다 낫다’는 평화지상론으로도 이어진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숱한 기습 도발로 우리 장병과 국민의 생명을 빼앗고, 영토를 유린한 북한 정권에 굴종해서라도 평화를 구걸하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북한 김정은이 최근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점령·평정·수복해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지난해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 이어 한국은 핵을 사용해서라도 괴멸시킬 대상이지 이 더 이상 ‘민족, 동족’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협박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집권 전후로 북한이 저지른 일련의 무력도발은 ‘민족’ ‘동족’이라는 단어가 사탕발림이었음을 진즉에 증명한 터다. 군 관계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긴장 고조의 책임을 현 정권에 전가하는 동시에 한국 내 북한 옹호 세력을 부추겨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의 일방적 전면 파기 선언에 이어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과 경의선 일대 지뢰 대량 매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쇄 포격 등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고조시키는 것도 이런 저의가 깔려 있다.
대남 핵 공격용 단거리미사일과 ‘핵 어뢰’,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미 전략폭격기 출동기지인 괌을 사정권에 둔 고체연료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까지 개발 중인 김정은은 4월 총선과 11월 미 대선을 겨냥해 7차 핵실험 등 전례없는 도발 폭주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어선 비핵화도, 진정한 평화도 요원할 뿐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향해 도발하면 단호히 응징하고, 여야와 이념적 진영을 떠나 국론을 결집해 대응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것이야말로 북한 정권과 그 추종 세력에게 핵이냐 생존이냐를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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