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아우르는 감동적인 전시 선보일 것”[영감 한 스푼]
미술관,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
김 관장은 대학 졸업 직후 백남준의 가족이 하던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이 커리어로는 부족하니 유학을 다녀오라’는 백남준의 조언으로 미국 뉴욕으로 가서 현대미술관(MoMA), 디아 비컨 등에서 인턴으로 일합니다. 수십 년 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그는 미국과 한국, 대학 강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신년 인사에서 ‘연구’와 ‘출간’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높은 관심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본질적인 콘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미술에서는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이 역할을 합니다. 학예사든 학예관이든 ‘계급장’을 떼고 실험미술이라면 1970·80년대, 혹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담론을 활성화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가 토대가 되어야 해외 석학을 한국에 초청하는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죠.”
―‘계급장을 떼고’라는 표현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하려는 취지인가요?
“미술관이 그간 관장과 학예실장이 공석이었고, 젊은 학예사와 학예관 사이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단호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형상’ 등 세부 사조 들여다봐야”
김 관장의 구상은 한국 미술사를 다시 제대로 연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색화’를 언급하며 “전시도 열리고 박서보 작가도 열심히 뛰었지만, 그것을 세계에 알린 건 결국 조앤 키 같은 연구자들이 저명한 출판사에서 출간한 연구서”라며 “이제는 다른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미술관의 국내 작품 소장 기준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우리 미술계 여러 사조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1980·90년대 민중미술도 있지만 ‘신형상’이라는 디테일한 사조가 있었어요.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책이 나오고, 전시가 열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은 미술관이 소장하는 순서가 되겠지요.”
―결국은 모든 바탕에 연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군요.
“반짝반짝한 기획사 전시, 관객들이 줄 서서 보는 전시는 그런 분야에서 풀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현’만이 할 수 있는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보여 주는 것이 저는 참다운 대국민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해외 석학을 초청하고 한국에 3∼6개월 머물게 하면서 한국 미술을 연구하게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 석학은 어떤 정도의 인물인가요?
“이미 관심을 표한 인물도 있지만 ‘빅 네임’을 모시기 위해 신중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해외 유력 대학의 미술사 교수, 혹은 유명한 출판사에서 관련 저서를 5∼10권 출간해 미술사에 언급이 된 분을 말합니다. 국제적 전시 기획을 맡았던 큐레이터도 가능하고요.”
―미술관의 연구와 해외 교류 두 축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1969년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만든 역사적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는 미국 필립 모리스와 정부가 기금을 댔어요. 참여 작가의 50%가 미국 출신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국 미술을 전략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작가와의 협업이 더 편하고 즐거워”
―상업 화랑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네. 그런데 상업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는 돈이 안 되어서 현실적으로 전시가 불가능했어요. 수백만 원 하는 작품을 팔아서 갤러리를 유지하기는 어렵거든요. 뉴욕 대안공간들의 실험적 전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99년 ‘사루비아 다방’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건강 악화(암 투병)로 손을 놓고 치료를 받은 뒤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비영리 대안공간인 ‘캔 파운데이션’을 만들었죠.”
―비영리기관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눈에는 갤러리 오너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화려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작품을 사라고 설득하는 것보다 작가와 대화하고 일하는 게 만족도가 커서 ‘아 나는 이쪽이구나’ 했어요. 친구들이 갤러리를 열면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야, 가방 하나 살 바에 작가 도와’라고 하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사루비아 다방을 하다가 몸이 아플 때 조금 후회했지만 아마 화랑 했으면 더 아팠을 거예요.(웃음)”
―미술관이 낯선 일반 관객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기관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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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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