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영유’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유'(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과거 영유에서 일한 외국인 강사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는 아이가 수업 중 욕설을 뱉는 걸 들었을 때 난감하다"며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타이르니 교육적으로도 좋은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친구들이 영유에 등록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벌써부터 영유는 '가기 싫다'고 드러누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유’(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영유를 안 보내는 게 좋겠다는 확신이 섰다. 하지만 아이의 친구들이 영유에 등록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함께 영유에 보내자’는 설득에 언론보도를 살펴봤다. 10여년 전만 해도 영유는 ‘비싼 비용에 효과는 미지수인 곳’이었는데 이젠 ‘양극화를 부추기는 곳’이라는 기사가 가득했다. 아이에게 우선 영어를 접하게 해봤다. 토요일, 외국인이 진행하는 미술수업에 등록했다. 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파이어 엔진, 레스큐 트럭’만 외칠 뿐 들어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렸다. 같은 어린이집 친구를 꼬여 함께 수업을 보내 봤지만 소용없었다. 친구와 함께 교실로 들어간 아이는 5분을 버티지 못한 채 ‘이머전시’를 외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벌써부터 영유는 ‘가기 싫다’고 드러누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유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주변의 조언에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교포 같은 영어발음을 자랑하는 주변 ‘새 세대’는 비결을 영유로 꼽았다. 한화 이글스 투수 문동주는 외국인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건 “영유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했고, 아이를 영유에 보내지 않았던 선배들은 이를 후회하기도 했다. 문득 훗날 아이가 영어를 못해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영유에 가봤다. 아이들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의 표현으로 가득한 에세이를 보면서 ‘이제 우리 아이 차례인가’ 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등록을 고민했다. 입학금 등 들어가는 비용을 빼면 매달 식비를 포함해 180만원이 필요했다. 첫째가 7살이 되는 2년 뒤 둘째도 같이 보내야 하는데 갑자기 교복도 그렇고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굳게 결심했다. 나라에서 보내라는 유치원에 보내기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을 뿐인데 올해로 다섯 해째를 사는 아이가 벌써 경쟁에서 뒤지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뿐이다.
정필재 문화체육부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