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효과 볼 수 있나” 결국 일단 후퇴한 KBO, 메이저리그와 한국의 괴리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KBO는 지난해 10월 18일 2023년 제4차 이사회에서 2024년 시즌에 피치클락과 이른바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ABS)의 전격 도입 계획을 예고하며 리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KBO는 이 제도 영입을 통해 최근 야구계의 궁극적인 숙제인 경기 시간 단축, 공격적인 야구 조성, 그리고 판정 시비를 줄이고 산업화에 한걸음 더 다가서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물론 단순하게, 갑자기 나온 안건은 아니었다. ABS는 최근 퓨처스리그 일부 경기에서 시행되고 있었고, 분석 결과 초창기보다 정밀도가 높아졌다는 확신 속에 전면 시행을 결정했다. 피치클락의 경우 마이너리그에 이어 2023년부터는 메이저리그에도 전면 도입되며 이미 그 효과를 본 터였다. 투수들의 투구 리듬이 빨라지고, 견제 제한(2회)이 생기면서 전체적으로 경기가 짧아졌다. 실제 메이저리그는 지난해 기록적인 경기 시간 단축 효과를 봤다.
메이저리그 룰은 결국 국제 야구의 표준 룰이 될 가능성이 크다. ABS 시스템은 아직 메이저리그도 도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지만, 피치클락은 많은 팬들이 환영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 시간 단축은 물론 피치클락의 선제적 도입이 국제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발표시 계획과 다르게, 올해 개막전부터 피치클락은 시행되지 않는다.
KBO는 지난 1월 11일 2024년 제1차 이사회에서 피치클락의 전면 도입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늦추기로 했다. KBO는 ‘경기 스피드업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는 피치클락 운영은 퓨처스리그에는 전반기부터 적용, KBO리그는 전반기 시범 운영을 거쳐 후반기부터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이는 실제 경기에서 선수들이 피치 클락에 적용에 대해 충분한 적응 시간을 부여해, 제도를 도입할 경우 혼란을 최소화 하고 매끄러운 경기 진행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10월 발표 당시 현장은 피치클락 도입에 신경이 곤두섰다. 메이저리그에서 시행하고 있어 낯선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시행령이 미정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현재 주자가 없을 때는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지 15초 안에 투구를 해야 한다. 주자가 있을 때는 20초다. 이를 위반하면 자동으로 볼이 하나 올라간다. 타자도 8초 안에 타격 준비를 모두 마쳐야 하며 위반하면 스트라이크 하나를 먹는다. 시행 초기에는 선수들이 이에 적응하지 못해 자동 볼넷, 자동 삼진이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하지만 KBO 현실에서 ‘무주자시 15초, 유주자시 20초’가 쉽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현장을 중심으로 쏟아지면서 KBO가 끝내 후퇴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마무리캠프 당시 만난 현장 감독은 상당수가 “피치클락 시간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A감독은 “지금도 12초룰(주자가 없을 때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투수는 12초 내에 투구해야 하는 룰)이 있어서 무주자시 15초는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유주자시 20초는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주자가 있을 때는 아무래도 투수, 야수, 주자 모두 사인을 보는 시간이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B감독 또한 “메이저리그와 우리 환경이 다르지 않나. 메이저리그는 피치콤도 있어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이 짧고, 야수들도 기계로 사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미국보다 우리는 벤치에서 작전이 더 많이 나온다”면서 20초가 짧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투수들과 야수들도 시행에 들어가 봐야 안다면서 말을 아끼면서도 이런 문제의식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KBO는 현장과 소통 자리에서 메이저리그보다 더 긴 여유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자가 없을 때는 18초, 주자가 있을 때는 23초, 그리고 견제 기회는 메이저리그보다 하나 더 많은 3회를 제안했다. KBO 내부 연구 결과 메이저리그보다 3초 정도의 시간을 더 주면 적응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KBO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후반기 도입 또한 전반기 반발이 심할 경우나 문제가 생길 경우 더 밀릴 수 있다.
KBO가 현장과 충분한 논의를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독단적인 결정보다는 충분한 소통이 옳다. 반대로 너무 성급하게 발표를 했고, 현장 감독들의 반대에 계획을 지키지 못함에 따라 체면을 구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구단 외국인 관계자는 “이미 새 외국인 투수들은 KBO가 피치클락을 전면 도입하는 것으로 다 알고 있더라”고 했다.
KBO는 서서히 적응해 피치클락의 기준 시간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1초라도 계속 모이면 결국 최종 종료 시간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18초-23초 룰’로는 경기 시간 단축의 효과가 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감독은 “18초는 극히 일부의 투수가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 23초도 현행 경기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D감독은 “ABS나 피치클락 모두 찬성하지만 올해는 2군에서 전면 시행을 해보고 제도를 완벽하게 다듬어 1군에 올려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꺼번에 너무 급격한 변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감독들도 피치클락에 우려를 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한 야구계 관계자는 "메이저리그도 제도 도입을 앞두고 현장은 다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갈수록 불만은 줄어들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만큼 이제는 현장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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