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한동훈 사퇴요구…박근혜 공천개입 유죄 판결문 보니
공직선거법 9조 "공무원 선거 영향미치는 행위 금지" 적용
박근혜 선거운동 vs 윤 대통령실의 '사퇴요구' 비교 가능?
당헌상 비대위원장 교체 쉽지 않아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한 위원장이 사실상 시인해 대통령실 당무개입 논란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공천개입으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다시 주목을 끈다.
한동훈 위원장은 22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의 과도한 당무개입'이라는 비판에 대한 묻자 “평가는 제가 하지 않겠다”면서도 “제가 그 과정에 대해 사퇴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통령실이 사퇴요구를 했다고 시인했다. 대통령실은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한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요구 진위여부와 당무개입 비판에 대한 입장을 아직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개입 사건 판례를 보면, 8년 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경선과정에서 정무수석실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이번 한동훈 위원장 사례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은 공직선거법 9조 위반 가능성에 주목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인겸 부장판사)는 2018년 11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해 형이 확정됐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의 준수 의무의 당위성과 헌법 제8조, 공직선거법 제9조를 강조한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누구보다도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하여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헌법 제7조 제1항이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한 점을 들어 “대통령에게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특정 정당, 자신이 속한 계급 종교 지역 사회단체, 자신을 지지하는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정하고 균형 있게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선거는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이라며 “선거에서의 공정성은 민주국가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헌법적 요청으로서, 공직선거법 제9조는 그 취지를 구체화하여 '자유선거원칙'과 '선거에서의 정당의 기회균등'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공무원에 대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특히 대통령에 대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공정한 선거가 실시될 수 있도록 총괄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포함한 공직선거법의 제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밝혔다. 또 “우리의 헌법과 법률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당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규정(헌법 제8조 제3항)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은 정당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장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내에서 자신과 견해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특정한 세력을 배척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새누리당 내에서의 공천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정무수석실을 통해 계획적이고 조직적 여론조사 실시 △선거 및 경선 전략 수립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 개입 △자신을 지지하는 특정 정치세력에게 유리한 공천룰이 공천과정에 반영되도록 했다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고 '당내 경선운동'을 함으로써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행위를 두고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인 존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및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지위'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형성과정에 개입해, 왜곡시키고, 정당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선거의 공정성과 의회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판례는 대통령실의 한동훈 위원장 사퇴 요구 사건과는 다르다. 이관섭 비서실장이 한 비대위원장에게 직접 사퇴요구를 했는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사퇴 요구의 사유는 무엇인지 등 언론보도와 정황 등을 통해 추정할 수는 있지만 아직 그 실체도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상태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퇴 요구를 한 것이 명백하다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공직선거법 제9조 위반에 적용될 수 있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에 미디어오늘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 등에게 △이 실장이 한동훈 위원장에게 사퇴요구한 것이 사실인지 △한 위원장이 사퇴요구를 거절했다고 했는데 이를 수용했는지, 아직 유효한 것인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의 당무개입 비판에 어떤 견해인지 △공직선거법 9조 위반이라는 견해를 어떻게 보는지 등에 대해 문자메시지와 SNS메신저로 질의했으나 오후 7시20분 현재 답변을 얻지 못했고, 전화연결도 되지 않았다.
한편 국민의힘 당헌상 비상대책위원장을 하차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도 미지수다. 한 위원장은 자신의 임기에 대해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했고,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당헌 보칙 제96조 제8항은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 등 궐위가 발생한 경우에는” 원내대표, 최다선 순으로 권한을 대행하고, 제9항은 “비대위원장의 사고가 발생한 경우” 원내대표 등이 대행한다고 나와 있다. 당헌 같은조 제10항은 비대위 존속기간이 6개월을 넘을 수 없지만, 전국위원회 의결로 1회에 한하여 6개월의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 한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임기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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