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고용 ‘따로국밥’ 된 미국경제[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1.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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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얘기하던 물가와 고용 사이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많이 훼손됐다. 미국에서 물가가 아무리 내려도 고용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경제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눈은 미국 고용시장으로’

미국 고용시장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변수로 떠올랐다. 과정은 이렇다. 전세계의 관심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언제 내릴까’에 쏠려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미국의 금리 결정은 고용시장에 달려있다. 지난해는 소비자물가가 금리 인하의 최대 변수였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 이후 소비자물가는 일단 안정됐다.

남은 건 고용이다. 고용지표가 악화되는 것만 확인되면 연준은 금리를 내릴 태세다. 하지만 고용지표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 실업률은 3.7%로 잠재실업률 수준을 밑돌고 최근 발표된 12월 비농업신규고용자수도 20만 명을 넘어섰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2년6월 9.1%에서 2023년 말에는 3%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3.6%에서 3.7%로 변하는데 그쳤다. 물가가 6%포인트나 떨어졌는데 실업률은 요지부동이다. 이런 상황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경제에 어떤 일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볼 시점이다. 과거부터 살펴보자.

◆물가와 실업은 마이너스 상관관계

물가와 고용간의 관계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다. 그는 1861년부터 1957년 사이 약 100년간의 통계자료를 분석해 명목임금 상승률과 실업률이 서로 마이너스 상관관계에 있음을 보여줬다. 명목임금이 오르면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이는 실업으로 이어진다. 명목임금은 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무앨슨과 로버트 솔로우는 명목임금 대신에 물가를 변수로 사용해 물가와 실업 간에도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있음을 실증 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실업이 늘어나면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들고 이는 물건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켜 물가를 떨어뜨린다.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면 임금이 줄고 이는 생산물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킨다. 이 경우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이 과정에서 고용이 줄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미국은 이같은 논증에 입각해 1960년 이후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와 고용을 조절해왔다. 기준금리를 올린 시점에서 다시 내린 시점까지를 한 주기라고 할 때 미국은 1960년부터 2023년까지 대략 7번의 ‘금리주기’를 거쳤다. 첫 번째 주기는 1960년부터 1971년까지의 기간이다. 미국은 이 때 연0.5%까지 떨어졌던 금리를 연9.5%까지 올렸다가 다시 연3%선까지 내렸다. 위 그림을 보면 이 시기 소비자물가와 실업률 간에는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비교적 뚜렷했다. 실업률이 높을 때는 금리를 내렸고 금리를 내리면 물가는 오르고 실업률은 떨어지는 식이다. 필립스 곡선의 그림과 미국 경제가 맞아 떨어졌던 시기였다.

◆오일쇼크때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그 다음은 1972년부터 1976년까지의 기간이다. 중동의 오일쇼크로 기름 값이 급등하던 시기였다. 미국은 당시 기준금리를 연3%대에서 연13%대까지 올린 후 다시 연4%대까지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때는 물가를 올린다고 해서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가와 실업률이 동반 상승하는 모양을 보인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기간이다. 유가 상승과 같은 외부의 충격으로 물가가 오를 때는 금리를 올리면 물가를 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업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이 시기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다음 주기는 1977년부터 1984년까지의 기간이다.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당시 폴 볼커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연20%까지 올리던 시기였다. 이때가 미국 역사상 물가상승률과 실업률간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형성됐던 시기였다. 볼커 의장은 실업률이 10%넘게 치솟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물가를 잡아야 미국경제가 중장기적인 안정궤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뚜렷한 소신이 있었다. 이 결과 15%에 육박했던 물가는 3%대까지 떨어졌다. 실업률이 급등해 볼커는 살해 협박까지 받았지만 꿋꿋하게 버티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볼커의 노력으로 정통적인 금리정책 가능해져

그 다음은 1985년부터 1992년까지의 기간이다. 볼커가 미국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킨 덕분에 미국은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와 실업을 조절할 수 있는 시기가 부활했다. 물가 상승률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 실업률도 통제할 수 있어 미국 통화정책의 전성기로 불린다. 1987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준 의장은 전임 의장인 볼커가 만들어 놓은 토대위에서 미국 연준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아울러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정책으로 미국경제에 거품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2008년도부터 진행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이때 미국 기준금리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6년여 기간 동안 0%대를 유지했다. 당시 초저금리 정책을 폈음에도 미국 소비자 물가는 1-2%대로 안정됐다. 금리를 낮췄음에도 저물가는 이어졌고 실업률은 9%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6년에 들어서야 4%대로 떨어졌다. 물가와 실업률간의 관계가 미미한 시기였다.
2016년부터 시작된 금리 주기에서는 물가와 실업률간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는 강해졌다. 이 기간 기준금리는 연0.5%를 유지하다가 저금리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국 연준은 금리를 연2.5%까지 올렸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기준금리는 다시 0.25%로 급락했고 갑자기 15%까지 치솟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재정까지 투입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탈피하면서 금리가 정상화 되는 듯 했으나 더 큰 암초인 코로나19 실물위기를 겪으면서 제로금리로 다시 선회한 시기다. 이 기간 실업률과 물가간의 마이너스 상관관계는 금융위기 때보다는 뚜렷해졌지만 그 이전 보다는 미미했다.

◆물가와 실업간 마이너스 상관관계 약해져

2022년부터 금리 인상 주기는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는 종전과 다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때는 코로나19때 경제위기를 막기위해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로 막대한 규모의 통화가 풀린 것에 대한 후복풍으로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때 9.1%까지 치솟았다.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실제 이 때 지표상 실업률은 3.6%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2022년 3월부터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매우 공격적으로 올렸다. 그 결과 연0.25%였던 기준금리는 연5.5%까지 올랐다. 금리인상 효과로 물가는 3% 초반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3.6-3.7% 수준을 기록 중이다.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의 논리인 ‘금리인상->물가하락->실업률 상승’의 경로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를 꼽아본다. 먼저 물가는 떨어졌지만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명목임금 상승률은 여전히 높다. 명목 임금 수준이 높다는 것은 여전히 노동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고용을 하고자 하는 기업이 많으면 실업률이 올라가기 어렵다. 다음은 정부의 정책이 경제주체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물가와 실업률간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화폐경제학의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은 개인들이 정부의 통화정책을 미리 예측하고 물가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면 실제 물가가 변동하더라도 고용을 늘리거나 줄이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실업률은 물가의 변화와 관계없이 ‘자연실업률’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인하 전망은 ‘자기실현적 예측’

미국 연준이 추정한 자연실업률은 2023년 말 기준으로 4.4%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수준에서 실업률은 큰 변동이 없지만 단기적으로는 통화정책에 따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프리드먼 이론의 핵심이다. 2024년 1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 수준은 3.7%로 자연실업률보다 0.7%포인트나 낮다. 그렇다면 물가수준이 지금보다 더 낮아져야 비로소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의 실업률이 자연실업률보다 낮은 국면에서는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는 셈이다.

역사적 상황에 비춰 미국 경제의 물가와 고용을 살펴볼 때 미국은 지금 금리를 내릴 상황은 아니다. 한마디로 물가와 고용간의 상관관계가 약해졌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금의 자연실업률보다 실제 실업률이 더 낮은데 금리를 내려 고용을 부양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기준금리를 곧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다.

이런 전망은 미래에 있을 일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수많은 경제주체에게 확산된다면 연준은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자기실현적 예측’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상황에서 금리가 조만간 내려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실현적 예측’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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