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고용 ‘따로국밥’ 된 미국경제[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얘기하던 물가와 고용 사이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많이 훼손됐다. 미국에서 물가가 아무리 내려도 고용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경제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눈은 미국 고용시장으로’
미국 고용시장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변수로 떠올랐다. 과정은 이렇다. 전세계의 관심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언제 내릴까’에 쏠려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미국의 금리 결정은 고용시장에 달려있다. 지난해는 소비자물가가 금리 인하의 최대 변수였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 이후 소비자물가는 일단 안정됐다.
남은 건 고용이다. 고용지표가 악화되는 것만 확인되면 연준은 금리를 내릴 태세다. 하지만 고용지표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 실업률은 3.7%로 잠재실업률 수준을 밑돌고 최근 발표된 12월 비농업신규고용자수도 20만 명을 넘어섰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2년6월 9.1%에서 2023년 말에는 3%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3.6%에서 3.7%로 변하는데 그쳤다. 물가가 6%포인트나 떨어졌는데 실업률은 요지부동이다. 이런 상황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경제에 어떤 일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볼 시점이다. 과거부터 살펴보자.
물가와 고용간의 관계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다. 그는 1861년부터 1957년 사이 약 100년간의 통계자료를 분석해 명목임금 상승률과 실업률이 서로 마이너스 상관관계에 있음을 보여줬다. 명목임금이 오르면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이는 실업으로 이어진다. 명목임금은 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무앨슨과 로버트 솔로우는 명목임금 대신에 물가를 변수로 사용해 물가와 실업 간에도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있음을 실증 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실업이 늘어나면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들고 이는 물건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켜 물가를 떨어뜨린다.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면 임금이 줄고 이는 생산물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킨다. 이 경우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이 과정에서 고용이 줄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오일쇼크때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볼커의 노력으로 정통적인 금리정책 가능해져
그 다음은 1985년부터 1992년까지의 기간이다. 볼커가 미국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킨 덕분에 미국은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와 실업을 조절할 수 있는 시기가 부활했다. 물가 상승률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 실업률도 통제할 수 있어 미국 통화정책의 전성기로 불린다. 1987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준 의장은 전임 의장인 볼커가 만들어 놓은 토대위에서 미국 연준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아울러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정책으로 미국경제에 거품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탈피하면서 금리가 정상화 되는 듯 했으나 더 큰 암초인 코로나19 실물위기를 겪으면서 제로금리로 다시 선회한 시기다. 이 기간 실업률과 물가간의 마이너스 상관관계는 금융위기 때보다는 뚜렷해졌지만 그 이전 보다는 미미했다.
◆물가와 실업간 마이너스 상관관계 약해져
하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3.6-3.7% 수준을 기록 중이다.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의 논리인 ‘금리인상->물가하락->실업률 상승’의 경로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를 꼽아본다. 먼저 물가는 떨어졌지만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명목임금 상승률은 여전히 높다. 명목 임금 수준이 높다는 것은 여전히 노동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고용을 하고자 하는 기업이 많으면 실업률이 올라가기 어렵다. 다음은 정부의 정책이 경제주체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물가와 실업률간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화폐경제학의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은 개인들이 정부의 통화정책을 미리 예측하고 물가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면 실제 물가가 변동하더라도 고용을 늘리거나 줄이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실업률은 물가의 변화와 관계없이 ‘자연실업률’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인하 전망은 ‘자기실현적 예측’
미국 연준이 추정한 자연실업률은 2023년 말 기준으로 4.4%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수준에서 실업률은 큰 변동이 없지만 단기적으로는 통화정책에 따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프리드먼 이론의 핵심이다. 2024년 1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 수준은 3.7%로 자연실업률보다 0.7%포인트나 낮다. 그렇다면 물가수준이 지금보다 더 낮아져야 비로소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의 실업률이 자연실업률보다 낮은 국면에서는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런 전망은 미래에 있을 일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수많은 경제주체에게 확산된다면 연준은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자기실현적 예측’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상황에서 금리가 조만간 내려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실현적 예측’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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