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저출생 대책, 해야 할 일 아닌 할 수 있는 일들

기자 2024. 1.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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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야당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날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출생률이 낮아진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이제까지 뭘 하다가 선거가 다가오니 앞다투어 대책을 내놓았는가 생각하면 얄밉기 그지없지만, 무슨 공약을 내놓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저출생은 일자리·주거·육아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산물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출생률이 낮아진 원인의 절반을 차지한다. 결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고 직장이 없어서, 직장이 있어도 불안정해서 결혼을 못하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인 남자는 40세까지 91%가 결혼하지만 하위 10%에서는 47%밖에 결혼하지 않는다. 집에 돈이 많으면 40세까지 80%가 결혼하지만 집에 돈이 없으면 27%만 결혼한다. 직장이 있는 사람이 취업을 못한 사람보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인 사람보다 결혼할 의향이 높았다.

청년들에게 우리나라 고용시장은 매우 불평등하다. 우리나라 청년의 취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10%가량 낮다. 그나마 취업한 청년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다. 지난 20년 동안 정규직과 임금 격차는 1.5배에서 1.9배로 늘었다. 청년들이 주로 취업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임금 격차도 1.5배에서 1.9배로 더 벌어졌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를 좁히지 않으면 청년들은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당도 야당도 불평등한 고용시장을 개편하겠다는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

육아 지원이 불평등한 것도 청년들이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직원 300명 이상의 기업에선 여성 10명 중 6~7명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지만, 직원 4명 이하인 작은 기업에선 3명밖에 육아 휴직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당의 육아 휴직 신청 시 자동 개시, 육아 휴직 급여 상한 인상, 야당의 육아 휴직자를 위한 워라밸 프리미엄 급여는 중소기업에서도 눈치 안 보고 수입 줄어들 걱정 없이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도록 할 것 같다.

육아 부담이 여성들에게 불평등하게 집중되는 것도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OECD 평균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육아 휴직을 2배 더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배 더 높았다.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 부담을 불평등하게 더 많이 져야 하는 한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여당의 남성 유급 출산휴가 1개월 의무화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10배 더 육아 휴직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생색내기’ 공약에 가까워보인다.

높은 집값은 계층 간 및 세대 간 불평등 문제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도권에 집을 사려면 평균 소득 근로자가 10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2006년 5.7년이었던 것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암울한 일이다. 집값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은 집이 없는 청년들의 호주머니를 보이지 않게 털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10년 넘게 맞벌이해서 한 사람 월급을 온전히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결혼, 출산, 육아를 망설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자녀 가정에 공공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야당의 공약은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책이다. 여당이 내놓았으면 획기적인 정책이었겠으나 야당이 내놓은 정책이라 실제 효과는 의문이다.

저출생이 청년층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물이라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여야 모두 일자리·주거·육아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 대신 불평등으로 나타난 문제를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어렵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은 것 같아 아쉽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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