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 욕망의 정치, 윤 대통령의 ‘싸구려 포퓰리즘’
서울 노원구의 28년 된 아파트에 사는 자영업자 구보씨는 요즘 희망에 부풀어 있다. 대통령이 직접 파격적인 재건축 완화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구보씨에게 재건축은 계층 상승의 유일한 사다리다. 구보씨는 쏟아지는 자영업자 대책이 좀 기껍다. 재난지원금 상환도 면제됐고, 은행 대출이자도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전기료도 감면받고, 세금 납부기한도 연장됐다. 조만간 신용사면도 해준다고 한다. 다 총선 때문이겠지만, ‘내 코가 석 자’인 마당에 흔들리는 마음 어쩔 수 없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주식 투자를 하는 구보씨의 조카는 요즘 희망에 부풀어 있다.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에 이어 대통령이 직접 증권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런 감세가 직접적 이익이 되진 않겠지만, 주식시장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다. 언젠가 주식으로 ‘대박’ 나면 감세의 수혜를 누릴 거란 꿈도 있다. 다 총선용이겠지만, 당장 내 주식이 오를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정부가 ‘욕망의 정치’를 부추기려 혈안이다. 주식이든 아파트값이든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얻는 게 욕망의 정치다. 욕망의 정치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 게 2008년 18대 총선이다. 뉴타운 열풍에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의 48개 선거구 중 40곳을 석권했다.
무능과 실정, ‘김건희 리스크’까지 겹쳐 지지율 30%대에 고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오로지 기대는 게 ‘욕망의 정치’ 소환이다.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 매표 복지 안 하겠다”고 다짐했던 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고 선거용 포퓰리즘 정책을 뿌리고 있다. 부동산 보유자, 자영업자, 개미투자자를 콕 집어 깎아주고, 줄이고, 퍼주는 정책 일색이다.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금투세 백지화, ISA 비과세 한도 상향,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증시 대책이다. 조세원칙, 조세형평성, 건전재정 같은 기준은 팽개친 지 오래다. 증시가 부양될 때까지 무모한 정책을 죄다 꺼낼 태세다. “국가와 사회가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 역동성을 끌어올리려면 금융투자 부분이 활성화돼야 한다”(윤 대통령)는 턱없는 명분을 달았다. 속내는 어떻게든 총선 때까지 주식값을 올려 구보씨 조카 같은 1400만 개미투자자의 ‘대박’ 꿈을 자극하겠다는 것이다.
구보씨 같은 600만 자영업자를 겨냥한 선심 정책은 전방위적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일회용품 허용으로 문을 열었다. 소상공인 57만명에 대해 총 8000억원의 재난지원금 환수를 면제했다. 은행의 손목을 비틀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만 2조원대 대출이자를 현금으로 돌려준다. 1분기 중 소상공인 126만명의 전기료를 감면하고, 128만명의 세금 납부기한을 연장해줬다. 역대 최대 규모(290만명)의 신용사면도 예고했다. 대부분 시행 시기를 1분기로 한정했다. ‘총선용’이란 걸 이리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어렵다.
나쁜 포퓰리즘의 극단은 파괴적인 부동산 정책이다. 다주택자 규제와 재건축·재개발 빗장을 왕창 풀어버렸다.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토록 하고,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임기 내 착공을 못 박았다. 산술적으로 향후 5년간 전국 아파트 460만가구의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대놓고 ‘부동산 욕망’을 부추기는, 개발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 보유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 업무보고를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총선용 정책 발표장으로 삼기 위해서다. 나라 곳간이 거덜나든 말든 ‘표만 되면 된다’는 맹목이 지금 국정을 관통한다. 앞으로도 좀 더 센, 하여 더 치명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낼 터이다. 상식의 잣대에서 보면 난도 ‘하’인 ‘김건희 문제’도 풀지 못하는 판에 기댈 수 있는 게 매표(買票) 정책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이 온통 ‘기승전-총선’이 되면서 위기 타개를 위한 거시경제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고 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부은 포퓰리즘 정책은 총선 후 심대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그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일찍이 말한 대로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저임금 근로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대선 출마 선언문). 윤석열 정부가 ‘싸구려 포퓰리즘’ 정책의 혹독한 후과를 감당할 실력이 있을까. ‘없다’에 한 표 던진다.
양권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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