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사태, 회계법인이 또 욕먹는 까닭은 [김경렬의 금융레이다]

김경렬 2024. 1. 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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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대학 건축학과 새내기들은 시공 기초에 대해 배운다. 시공에서는 구조가 중요하다. '트러스'라는 구조가 가장 강력한데, 삼각형 모양을 조합해 하중을 지면으로 분산하는 방법이다. 다리를 건설할 때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모형 다리를 설계·제작하는 팀 과제를 내준다. 다리에 팀원들이 모두 올라가 하중을 견디면 높은 점수를 받는다. 몇 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다리가 대다수지만, 본인이 설계한 구조의 안정성을 자평하면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토목건축의 핵심 이론에 접근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책임확약' 건도 이와 같다. 사업장에서 돈을 빌리고 이를 갚지 않을 때 건설사들이 리스크를 떠안겠다고 약정한 것이다. 규모는 수조원이라서 이들 대출로 사업계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줄도산 날 수도 있다. 대학의 과제처럼 단단한 구조로 자금을 융통했으니 리스크는 본인들이 지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다만 구조 설계부터 트러스와 같은 가장 강력한 기법을 선택했는지는 미지수다.

요즘 같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꽤 괜찮은 수주가 나와도 대출에 나서는 금융사를 찾기 어렵다. 부동산 시장이 어수선해서다. 건설사들이 제시한 기존 방식의 지표를 진실성 있게 톺아봐야한다는 경고음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어떤 꼼수가 숨겨져 있는지 봐야 정확한 상황을 진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회계 지표를 점검할 외부 기관은 회계법인이다. 워크아웃에 돌입한 태영건설의 작년 감사인인 'KPMG삼정'은 3분기보고서를 통해 "(태영건설의 회계가) 중요성 관점에서 공정하게 표시하지 않은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태영건설의 모기업인 티와이홀딩스를 감사했던 'EY한영'도 같은 입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건설사 지표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비유했다. PF대출이 분명한데, 일반대출로 분류되는 건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태영건설의 부실 PF를 규모는 5조~6조원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태영 측이 발표한 수준(2조5000억원)의 두 배를 넘어선다. 분명한 건, 우발채무를 분류한 정도에 따라 당장 회사 수익 지표가 영향받는다는 점이다. 해당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부실을 자회사에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태영의 경우에도 모기업인 티와이홀딩스가 이를 떠안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다 연대 보증 건들이 밝혀지면서 일단 워크아웃으로 마무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회계사들이 코피를 쏟아내며 얻어낸 결과물에 대해 처음부터 부실감사를 운운할 순 없다. 연말 사업보고서 시즌에 돌입하면 회계사들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 회계사는 "연말에 연인이 있는 회계사는 솔로가 되고, 사업보고서 감사가 끝나는 새해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며 고충을 전했다.

금융당국에서도 회계 업계의 입장을 반영해 인력 보강을 지원했다. 회계법인 자체적으로도 촘촘한 감사를 다짐하면서 충원에 나섰다.

태영건설 감사인인 KPMG삼정의 경우 지난 2000년 회계법인 '산동'을 흡수해 감사 역량을 확충한 대표적인 곳이다.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산동이 좌초되면서 해당업체 인력들을 대거 유입했다. 산동은 1998년 대우중공업에 대해 자산이 부채보다 4조원 이상 많다며 '적정'하다는 감사 의견을 냈다. 이러한 입장은 1년 만에 뒤집혔다. 산동은 뒤늦게 대우중공업의 자본이 남지 않았다며 '자본잠식'과 '의견 거절' 평가를 냈다. 그 결과 부실감리로 피해 입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대부분 소속 회계사들은 12개월 영업정지 조치를 받을 위기에 놓인 산동을 손절했다. 산동은 2000년 11월, 금감원에 "회계감사를 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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