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그림] 발가락 사이로
김상민 기자 2024. 1. 22. 20:10
긴 여행 중 걷다 발이 아프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최대한 벌려 봅니다. 그러나 내 몸 제일 끄트머리에 살고 있는 발가락들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발가락을 벌리려 해 봐도 앞뒤로 조금 꿈틀거릴 뿐입니다. 그나마 최대한 벌린 발가락 사이로 바람을 흘려보내 봅니다.
바닷가에서는 뜨끈한 모래들을, 맑은 시냇물에선 시원한 물방울들을 발가락 사이로 흘려보내 봅니다. 바람과 모래와 물방울들이 신발과 양말과 거대한 내 몸뚱이에 눌여 있던 불쌍한 나의 발가락들을 어루만져 줍니다. 언제나 말을 듣지 않는 못생긴 발가락들이지만, 덕분에 좋은 곳들을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나의 발가락입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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