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문 앞에 두고 벨’의 괴로움
새벽 3시 라이더 우상택은 손님이 앱에 적은 주소대로 아파트단지에 들어섰다. 주소에는 101동인지 102동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받지 않았다. 여덟 번을 반복했지만 끝내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101동과 102동의 같은 호수로 벨을 눌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응답이 없다. 배달을 시키지 않은 주민이 깨어나 욕설을 퍼부어도 할 말이 없는 시각이었다. 플랫폼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담당부서를 찾아야 한다며 앱 내 채팅상담으로 문의하라 했다. 채팅을 남기고 답변을 받으려는데 하필 휴대폰 충전기가 고장나 배터리가 3%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보다 휴대폰을 살려야 했다. 편의점에서 5000원짜리 일회용 충전기를 샀다. 플랫폼에서 고객과 연결이 안 되니 음식을 자체 폐기하라는 답변을 받기까지 50분을 길거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눈치 없는 AI 알고리즘은 다음 배달을 가라며 콜을 배차했다. 기계보다 무정한 건 사람이라, 새벽 5시 퇴근해서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 전화기가 울렸다. 고객이었다. 받지 않았더니 분노가 담긴 문자가 왔다. 씻고 있어 연락을 못 받으면 공동현관 앞에라도 놓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항의였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퇴근을 한 건지 출근을 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2024년 1월1일 새벽이었다.
‘문 앞에 두고 벨’ 여섯 글자의 고객 요청사항을 수행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며칠 전, 인터폰 없는 건물에 배달을 갔다. 손님이 전화를 수차례 안 받았고, 겨우 연락이 닿은 손님에게 앞으로는 현관문 앞에 놓고 가달라는 메모를 남겨달라 했다. 손님은 그랬다가 누가 가져가면 어쩌냐고 되물었다. 노동자가 도둑맞은 시간, 다음 배달을 수행할 수 없어 입은 손해와 감정적 손상에 대한 고려는 없다.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를 온갖 사건·사고들을 라이더 홀로 책임지고 있다.
책임이 불분명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 대가 없이 전가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권력이다. 우리는 이것을 플랫폼노동, 그림자노동 등의 용어로 명명해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것은 간편하고 멋진 일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복잡하고 구차한 일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나에게 전가된 음식값 변상을 하지 않기 위해, 받아야 할 3000원의 배달료를 쟁취하기 위해 비정규직 고객센터 노동자와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벌여야 한다. 승리의 전리품엔 자괴감도 포함된다. 노동자들은 적게는 500원 많게는 1000원 정도로 책정되는 노동의 대가를 입증하고 쟁취하기 위해 일일이 회사에 공문을 보내고 증거자료를 모으고, 무려 기자회견과 집회, 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뜬금없이 금융투자로 계급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계급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휴대폰 터치로 수백조원의 돈을 굴리는 계급과 단돈 3000원을 위해 몸뚱어리를 굴리는 계급 간의 격차를 금융투자로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 앞에 두고 벨’을 수행하기 위한 노동에 대한 이해 없이는 계급격차 해소도 불가능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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