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벼랑끝 남북관계, 건설적 전략 모색해야
2024년은 동북아시아의 정치·외교 지형이 출렁이는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4월 총선을 비롯해서 이미 치른 대만을 비롯해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의 주요 선거가 각국의 국내 정치는 물론이고 국제정세와 남북한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역대 남한 정부가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을 추구했다면서 남한을 더 이상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상 남한과 결별하겠다는 선언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여정 부부장도 2022년 8월 남한의 담대한 구상을 비판하며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했다.
북한은 작년부터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불렀고 최근에는 주적으로 단정했으며 조평통, 민경협 등 관계기관과 6·15 공동선언 북측위원회, 민화협 같은 교류단체를 정리하고 평양방송 등 선전매체도 폐쇄했다. 체제경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남한 내 친북세력 구축과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한 공산화 통일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북한은 소련의 막대한 핵무력도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핵이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지켜줄 수는 있지만 남한과의 교류가 초래할 사회적 충격을 견딜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쓴 K팝 등 K문화 열풍이 북한을 삼킨다면 소련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만도 하다.
북한은 2020년 외부 사조를 막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제정했다. 결국 남북대화의 빗장을 걸겠다는 이번 결정은 핵이라는 하드 파워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강력한 소프트 파워에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의 매우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북한은 지난 1월 초 서해에서 포사격 훈련을 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다만 포사격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이라며 한미에 그 책임을 전가했다. 포탄이 NLL 이남 지역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고, 백령도와 연평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긴장고조를 원치 않는다는 신호도 보냈다.
이렇게 계산된 무력시위의 목적은 9·19 군사합의가 사라진 불안한 안보 현실을 대내외에 선전하고 남한에 전쟁공포감을 유발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론 분열을 부추기려는 것이다.
새해 동북아 외교의 방향을 좌우할 열쇠는 지난 1월 5일 김정은이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각하'라는 존칭을 사용하며 보낸 위로 전문이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북·일 대화를 추진했으며, 작년에 정상회담을 목표로 두 차례 비밀접촉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이 납치문제에 전향적인 의사를 보인다면 지지율 추락에 허덕이는 기시다에게 정치적 반전의 호기가 될 수 있다.
연초부터 남북간에 긴장을 높인 상태에서 상반기 북일 관계를 궤도에 올려놓고, 차기 대통령이 확정되는 연말쯤 북미관계를 뚫는 것이 김정은의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려고 했으나 이제는 도쿄를 통해 가겠다는 계산이다. 북일대화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될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한미의 확장억지 및 대북제재가 마주 보고 질주하는 '치킨게임'의 형국이다. 양측 모두 신중하고 사려 깊게 행동해야 누구도 원치 않는 우발적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아울러 북일관계 개선으로 동북아 외교에 지각변동이 발생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지금까지 정부가 견지해 온 원칙있는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여는 마중물이자 새로운 대북 이니셔티브를 구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다. 이를 토대로, 역동적인 동북아 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핵을 가진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건설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국가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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