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공약 준비됐나요? 시민 60% “내 표심에 영향”
사회적 위기…인구 다음으로 기후 꼽아
“재생에너지 늘리자” 원전의 2.5배
국민 3명 중 2명이 ‘기후위기 대응 비용 마련을 위해 공공요금이나 공과금에 탄소배출량 비용을 부과하자’는 제안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적정 자동차 대수를 정해 차량 등록을 제한하자’는 데에도 5명 중 3명이 동의했다. 나날이 심화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응답자 5명 중 3명은 ‘마음에 드는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있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로컬에너지랩과 더가능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은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24 기후총선 집담회’를 열어 이런 내용이 담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기후위기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전국 17개 광역시·도 1천명씩, 모두 1만7천명을 대상으로 172개 문항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인구위기’(58.3%)에 이어 ‘기후위기’(20.0%)가 앞으로 다가올 사회적 도전 과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꼽았다.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해선 10명 중 9명(92.9%)이 ‘자연변화’가 아닌 ‘인간활동’의 영향이라고 답했다.
절반 가량의 응답자(48.8%)는 ‘탄소중립 정책이 지역산업에 단기적으로는 나쁘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 대응 비용 마련을 위해 공공요금이나 공과금에 탄소배출량에 따른 비용을 부과하자’는 의견에 65.5%가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기후위기 대응 재원으로는 ‘탄소세 신설’(37.8%)과 ‘부유세 신설’(29.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아울러 전력생산 분야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59.1%)를 가장 많이 꼽혔으며, ‘원자력 발전 확대’는 23.7%에 그쳤다. 또 차량 등록 제한(56.6%)이나 신규 내연차 판매중단(63.8%)도 절반 넘는 이들이 찬성했다.
응답자 3명 중 2명 정도(62.3%)는 오는 4월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후보에게 더 관심을 둘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기후대응 공약이 마음에 든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이거나 후보라도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의견이 각각 60.5%, 62.5%로 높게 나타났다.
기후정치바람은 이번 조사에서 기후정보 인지도와 기후위기 민감도, 기후 투표 성향을 평가해 ‘기후유권자’를 가려냈는데, 그 비율이 33.5%로 높게 나타났다. 통념과는 달리 성별로는 남성(35.7%), 연령별로는 60살 이상(35.2%)의 비중이 큰 것이 눈에 띈다. 전 연령층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기후위기 민감도에서 1~3%포인트가량 높게 나타났지만, 기후정보 인지에서 남성에 견줘 10%포인트 정도 낮았기 때문이며, 연령이 높아진다는 것이 기후 민감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17개 광역시도 별로는 전남, 서울, 대전, 광주 등의 순으로 기후유권자 비중이 높았으며, 충북의 비중이 가장 낮았다. 기후정보 인지에선 서울 유권자가 가장 높았으나, 기후위기 민감도에선 전남이 1위를 차지하며 전남의 기후유권자 비중이 커진 것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지금까지 기후정치를 위한 노력이 선거 때 공약 채택 등을 목표로 한 ‘상층 로비’였다면 이 프로젝트는 직접 유권자를 만나자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무상급식이 한때 선거의 주요 의제가 된 것은 그 의제를 들고 골목을 돌며 싸웠던 시민들 덕이며, 기후 이슈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이번 조사는 기후유권자가 어느 지역에 많고 이들의 지지 공약이 무엇인지 발굴해내는 것, 이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 정치전략을 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기후정치바람은 해당 지역의 기후유권자 특성을 기반으로 17개 광역시도를 4~5개 구역으로 나눈 뒤 이중 가장 기후유권자가 많은 곳을 ‘기후선거구’로 꼽고, 설문을 통해 각각의 지역 유권자들이 특히 어떤 기후관련 의제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이는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를 의제화하려는 기후환경단체나 정치권이 참고해 이곳에서 적극적인 기후정치를 펼치라는 주문이다.
예를 들어, 기후유권자 비중이 가장 높은 전남 내에선 고흥·보성·장흥·강진 지역에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거주지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높다’(77.8%), ‘탄소중립정책이 거주지역 산업에 도움이 된다’(43.4%)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서울에선 서북부인 은평·서대문·마포 지역에 사는 이들이 서울 내 다른 지역보다 자동차 규제(64.9%)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 하향 반대(30.9%) 의견이 높았다. 대전에선 유성구가 미니태양광 보급사업 중단 반대 비율이 54.4%로 다른 지역보다 높았고, 탄소중립 교통대책으로 대중교통 확대를 꼽은 이들(61.1%)이 전국 평균(59.4%)보다 많았다. 유성구 응답자들은 대전 내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위기 민감도, 이해도가 높고 에너지 전환에도 적극적이었다.
기후정치바람은 오는 2월 종합보고서 발간 및 2차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앞으로 2027년 대선까지 해마다 비슷한 조사와 기후유권자 발굴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집담회에 참석한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역 맞춤형 공약을 패키지화해 지역 유권자들을 모아내고 정책연합을 추동하는 역할을 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동력이 선거 이후에도 공약 실현을 강제하는 구체적 힘으로 작동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현실 정치는 의제의 전쟁판인데 21대 국회에서 기후위기 성과가 없었다면 이 의제의 수호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기후위기 문제를 의제화하려면 이 의제의 수호자들을 국회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 패널들에게 설문 링크를 보내는 온라인 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0.8%포인트에 95% 신뢰수준으로, 지난해 11월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라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가중치를 부여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기후변화 심각해질수록…한국인 기후위기 의식도 높아져
‘기후정치바람’이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에 대한 높아진 국민들의 요구 수준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폭염과 가뭄, 홍수 등이 빈발하며 위기 의식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인들의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환경부는 1995년 처음 ‘환경보전에 관한 국민의식조사’를 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은 조사 범위에 포함하지도 않았다.
2000년 두번째 조사에서 처음 ‘기후변화’를 조사 대상에 넣었지만, 국민들은 기후변화를 물, 대기, 생활쓰레기, 산업폐기물,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이어 6번째로 심각한 환경문제라고 답했다. 하지만 8년 뒤 같은 질문을 다시 했을 때,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응답률은 90.9%로, 나머지 환경문제를 모두 앞질렀다.
한국환경연구원이 2012년부터 매년 계속해 오고 있는 ‘국민환경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2013년 조사에서 가장 우려하는 환경문제로 기후변화를 우선 선택한 응답은 10.5%에 그쳤다. 자연자원 고갈(24.3%), 쓰레기 증가(16.4%)에 이어 세번째였다. 하지만 5년 뒤인 2018년 조사에서 ‘기후변화 피해 대응’은 ‘대기질 개선’에 이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 2위에 올랐고, 2022년 조사에선 1위가 됐다. 같은 조사에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심각하다’고 한 응답율도 81.1%, 88.6%, 89.5%로 높아졌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지난해 조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2010년대는 한반도의 이상기후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해, 이런 환경적 요인이 기후위기에 대한 국민 의식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020년에 ‘2019년 이상기후보고서-10주년 특별판’을 내며 “2010년대는 과거 경험하지 못한 폭염, 열대야, 태풍 등 이상 기후 현상이 지속됐으며 폭염일수가 2000년대에 비해 50%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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