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지원금 공시 의무 폐지… 국민 통신비 부담 던다 [정부 '생활규제 개혁안']

이진경 2024. 1. 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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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사들 고객 유치 노력 안해
스마트폰 가격은 지속적 상승
선택약정할인제도는 계속 유지
‘이용자 차별·지원금 통제’ 숙제

정부가 10년 만에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다. 통신사들의 보조금 경쟁으로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싸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총선 등 일정을 고려하면 실제 시행 시기는 미지수다. 단통법 폐지 후 난립하는 지원금 통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가 2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앞 홍보 문구. 연합뉴스
22일 업계에 따르면 2014년 10월 시행된 단통법은 신규가입이나 기기변경 등의 가입 유형에 따라 보조금을 다르게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단말기 출고가와 보조금을 공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통법 도입 이전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누구는 70만원에, 누구는 공짜로, 이 지역에서는 50만원에, 또 다른 지역에서는 30만원에 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통신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휴대전화를 싸게 파는 이른바 ‘성지’에 판매장려금을 뿌렸기 때문이다. 정보를 모르면 ‘호갱(호구+고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가 통신사 대리점에서 휴대전화 단말기를 살 때 가입 유형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동일한 지원금을 받도록 법으로 규제했다. 공시지원금에 추가지원금(공시지원금의 15%)까지만 허용했다.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에 들이는 돈을 요금제 가격 경쟁에 투입해 통신비가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통사들이 ‘다 같이 돈 쓰지 말자’쪽으로 기울면서 통신비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통 3사의 2014년 영업이익은 1조6000억원이었는데 2022년에는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성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이통사 영업이익이 서비스 요금 인하나 서비스 증진으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사이 스마트폰 가격은 지속해서 상승하면서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최근 사전예약을 시작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의 기본 모델은 115만5000원, 울트라 모델은 169만8400원이다. 통신사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을 더해도 소비자는 5만7500∼27만6000원 수준의 혜택만 있다. 

‘호갱은 줄었지만 전 국민이 호갱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정부는 5G(5세대 이동통신) 중간요금제 및 3만원대 5G 최저 구간 신설, 청년·고령층 요금제 도입 등 통신비 인하 정책을 지속 추진했으나 고가 단말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가계 부담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 따라 단통법 폐지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다.

이 부위원장은 “오늘 토론회에서 학생, 주부, 휴대폰 판매업자,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참석자들이 단말기유통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감 없이 제시했다”며 “단말기유통법 시행으로 인한 문제점을 토로하며 제도 개선에 기대감을 보였다”고 전했다.

정부는 단통법이 폐지되면 지원금 제한이 사라져 국민이 지금보다 저렴하게 단말기를 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할인 광고가 붙은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연합뉴스
소비자 체감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21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되지 않으면 4월 총선 후 22대 국회로 논의가 넘어가게 된다.

단통법 폐지 이후 불법 보조금으로 인한 이용자 차별 방지와 시장 안정화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은 지원금이 공개되지만, 단통법이 폐지되면 다시 알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대리점에서 지원금을 더 받는 조건으로 비싼 요금제를 쓰도록 요구하면 통신비 절감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모 중인 제4 이동통신사나 알뜰폰 사업자들은 재원이 부족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동통신업계는 단통법 폐지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경쟁 활성화와 고객 선택권 확대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대리점·판매점을 회원으로 둔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단통법 폐지를 환영했다.

정부는 공시지원금 대신 통신기본요금의 25%를 할인받는 선택약정할인제를 유지하고, 법 개정 과정에서 이통사·제조사·개별 대리점이 보조금을 공시하도록 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 부위원장은 “사업자 간에 과도한 출혈경쟁과 이용자 차별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 행위”라며 “이용자 보호를 위해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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