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잘못 잡은 LH 혁신안…토지청·주택청 설립해 공공성 확대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4. 1. 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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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지난 12월12일 ‘LH 혁신 및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연합뉴스

반영운 |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

대한민국 정부(국토교통부)는 지난 12월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의 부실경영, 부패 카르텔 등으로 인해 생겨난 공공주택개발사업에 대해 혁신방안을 제시했다. 그 핵심은 엘에이치가 독점적으로 수행하던 ‘공공주택 사업’을 민간 개발업자도 단독으로 수행하게 해 경쟁 체제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엘에이치의 전관이 취업하는 회사는 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하는 전제 조건과 함께.

‘공공(임대)주택’은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양질의 주택을 무주택 국민에게 공급해 국민의 보편적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그러나 이번 혁신안은 국가의 공공주택 공급 책임과 의무를 맡고 있는 엘에이치의 근본적 혁신이 아닌 단순 사업방식의 개선으로 보이며, 헌법이 규정한 국가의 공공주택 공급 책임과 의무를 민간사업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즉, 민간사업자에게 ‘공공개발사업자’의 권한을 부여하면서 주택기금 활용, 미분양 주택 매입 시 손해의 일부 국가 보전 등의 특혜를 제공하는 것은 전혀 혁신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기존 엘에이치가 진행한 ‘수용 토지 매각, 건물 분양’ 방식이 민간사업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사업자와 경쟁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엘이치가 민간사업자와 왜 경쟁해야 하나? 그리고 경쟁하면 이길 수는 있으며, 왜 이겨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해 국가는 답을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밝혀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있다. 그것은 바로 엘에이치가 오랫동안 시행해 온 대부분의 공공개발사업(주택, 산업단지 조성 등)에서 ‘공공의 이름으로’ 수용한 토지를 매각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공공주택 공급 및 토지비축의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싱가포르(공공주택 거주율 약 86%, 자가 소유율 약 92%, 국가 토지 소유율 약 90%)가 취했던 방식, 즉 수용한 토지를 매각하지 않고 공공토지로 비축하고 그 위에 주택과 산업단지를 공급하는시스템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엘에이치는 자신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인 ‘공공토지비축’을 무시하고 수용한 토지를 다시 민간에게 매각함으로써 초기 투자비용을 해결했지만 토지 불로소득을 조장하고 국가 차원에서 부의 불평등을 초래했다. 이제껏 엘에이치가 시행한 일부 ‘공공토지 비축’은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다. 이번 혁신안은 엘에이치의 근본적 주요 가치인 토지·주거의 공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 문제만을 개선하려는, 혁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주택 등 부동산 문제 해결과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 엘에이치의 해체를 전제한 토지·주거의 공공성 제고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토지청’을 설립해 그동안 엘에이치와 국가가 등한시했던 공공토지 개발, 비축, 관리 등의 업무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토지청’은 기존 엘에이치의 토지개발사업 및 매매 등을 제외한 각종 부문의 공공 토지개발 계획, 공공토지 비축을 포함한 토지 관리 정책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둘째, ‘주택청’을 설립해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공공주거정책을 합리적으로 수립 및 시행할 필요가 있다. ‘주택청’은 주택 공급 계획 수립, 정책 시행, 주택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셋째, 공공 토지·주택 개발사업과 관련해 국가 단위에서는 ‘국토개발청’과 지역 단위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지역 개발공사’가 주도적으로 수행하게 한다. ‘국토개발청’은 국가의 안보 등 전략적 사업 등의 목적을 위해 제한적으로 공공개발사업을 수행한다. 기타 산업과 주거 등 다양한 공공개발사업은 ‘지역 개발공사’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수행한다. 민간 개발업자는 공공의 위탁을 받아 단순 건설사업에 참여한다.

이를 위해 먼저, ‘국토개발청’이나 ‘지역 개발공사’가 각종 공공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연기금 및 금융 지원 등을 활용해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앞으로 공공주택이나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는 수용한 토지를 매각하지 않고 공공임대(토지임대 포함)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셋째, 범사회적 논의를 통해 엘에이치 공공주택공급 방식의 개선이 아닌 국가 운영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엘에이치로 대변되는 국가의 토지·주택 정책의 근본적 문제를바로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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