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머스크가 극찬한 '자유 기업 자본주의'의 함정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1. 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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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대통령 충격적인 다보스 연설
밀레이 “국민은 국가에 기댄 기생충”
“성공한 기업가만 빈곤 종식” 주장도
‘자유 기업 자본주의’ 제어 가능할까

#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시절. 여러 나라에서 그를 기행을 일삼는 가십성 인물로 다뤘다. 민주주의 체제가 급진적인 주장을 어느 정도 막아주리라는 기대도 작용했다. 하지만 밀레이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연설에서도 여전히 급진적이고, 앞뒤가 잘 들어맞지 않는 '자유 기업 자본주의(Free enterprise capitalism)'를 들고나왔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지난 1월 17일 다보스포럼 연설이 세계 각국에 충격을 줬다. [사진=뉴시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친기업주의를 명백하게 밝혔다. 밀레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를 '자유 기업 자본주의(Free enterprise capitalism)'라고 명명했다.

극단적 자유주의 및 무정부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밀레이는 이날 연설에서도 "국가 그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을 비롯한 몇몇을 '기생충'이라고 표현하고, 사회 정의를 비판하고, 기업의 독점을 옹호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주장을 이어갔다.

밀레이의 발언을 옹호하는 이들의 면면과 그 메시지를 전달한 채널도 화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밀레이가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자신의 선거 구호를 응용해 극찬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도 자신이 인수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밀레이의 다보스 연설 동영상을 공유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밀레이의 선거운동 시절부터 그를 줄곧 가십성 인물로 취급했다. 하지만 밀레이를 향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관심은 무척 뜨겁고, 의외로 진지하다. 밀레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밀레이가 선거운동을 위해서 연기를 했다거나, 다보스에서 기업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다고 취급하기에는 '자유 기업 자본주의'의 내용이 너무 무겁다.

■ 밀레이식 자본주의=하비에르 밀레이의 '자유 기업 자본주의'의 면면을 살펴보자. '기생충' '독점은 시장실패가 아니다' 등 자극적인 수사를 빼고, 그 내용을 위주로 봐야 한다.

첫째, 밀레이는 사회주의가 불러온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업들뿐이라고 주장한다. 밀레이의 관련 발언은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Socialism)를 시도한 나라는 항상 어디에서나 빈곤을 불러왔다. 사회주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실패했다. 사회주의는 1억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다." "자유 기업 자본주의는 세계 빈곤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유일하게 바람직한 시스템이다."

참고로 밀레이가 내뱉은 '사회주의가 살해한(murder) 1억명'이라는 발언의 근거로 추정되는 것은 영국 시각 뉴스 매체 '뷰티풀뉴스'의 인포그래픽으로 추정된다. 이 매체는 '20세기의 죽음'이라는 창작물에서 20세기에 이데올로기 문제로 1억4100만명이 죽었는데, 그중 9400만명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죽었다고 발표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동생 카리나가 지난해 5월 「인플레 종료」라는 자신의 신간 홍보물로 제작한 100달러 지폐. [사진=뉴시스]
[자료 | 다보스포럼 연설]

매체는 중국에서 1949~1976년 6500만명, 소비에트연방(소련)에서 1922~1953년 2000만명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파시즘이 2700만명, 민주주의가 1475만명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추산했다.

둘째, 밀레이는 사회 정의, 국민, 국가, 독점의 폐해를 모두 부정한다. 밀레이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사회 정의라는 관점에서 부의 재분배에 나선 결과, 세계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밀레이는 사회 정의 옹호론자들이 경제를 제로섬 관점에서 보고 있지만, 기업가들이 경제라는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차원에서 독점도 시장실패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밀레이의 시각이다. 그래서 밀레이는 다보스 연설에서 국민 등을 국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고 표현하고, "국가가 문제 그 자체"라며 기업가들에게 "아르헨티나는 당신의 무조건적이고 확고한 동맹국"이라고 말했다.

셋째, 밀레이는 서구권이 사회주의로 전환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기업가들의 자유를 주장했다. 여기서 밀레이가 말하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국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주의가 아니다"면서 "국가는 이제 화폐 인쇄, 부채, 보조금, 금리와 가격 통제, 독점(시장 실패) 규제를 통해서 수백만명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밀레이가 대선 후보 시절에 중앙은행을 폐지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놓자 여러 나라에서 가십으로 취급했지만, '자유 기업 자본주의'에서 발권력의 제거는 '밀레이식 사회주의'와 싸우는 핵심 무기다.

■ 위험한 지점들=하비에르 밀레이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평가했던 이유는 이번 연설에서 "성공적인 기업가는 영웅"이라고 말한 것처럼 국가의 자리에 대신 기업을 놓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밀레이의 경제관을 경제학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위험해 보이는 지점도 다수 존재한다. 밀레이가 자신이 칭송한 '성공한 기업가'의 반대편에 배치한 '정치계급'과 국가에 기생한다는 '기생충' 세력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 위험도가 좌우될 것으로 보여서다.

밀레이가 주창한 '자유 기업 자본주의'의 질주를 억제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밀레이의 연설을 막지 못했다는 건 민주주의 체제가 '자유 기업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없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밀레이의 소속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아르헨티나 상원 72석 중 7석, 하원 257석 중 38석을 차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상생금융을 주제로 한 4차 민생토론회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르헨티나 정치와 경제를 조금 더 깊이 보면, 밀레이의 등장 배경을 알 수 있다. 1910~1920년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침체를 겪은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1차 세계대전으로 인구 유입이 줄면서 농산물 수출 경제 구조가 무너졌다. 둘째, 미국의 1920년대 말 대공황이 세계 무역 수요를 급감시켰다.

셋째, 아르헨티나 보수와 진보 두 세력이 번갈아 가며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둘 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일관했다. 밀레이가 보호무역 회귀의 상징인 트럼프와 달리 자유무역을 최고 가치로 두고, 대신 수출의 주체인 기업을 옹호하며, 정치와 국가라는 개념을 기업가를 핍박하려는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밀레이의 주장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이유와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 우리와 맞닿는 지점=친기업이라는 면에서 밀레이의 사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도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상속세의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대주주가 주가 상승을 꺼린다'는 점을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꼬집으면서 상속세 폐지를 언급했다.

아울러 대기업 세액공제, 납세자를 향한 태도 등에서도 최근 윤 대통령의 친기업적 성향은 더 짙어졌다. 다만, 총선용으로 치부하기엔 상속세 폐지에 이르는 경로 등 우리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논리가 등장한다. 이 역시 공론화의 장에서 논의해야 할 만한 이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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