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5개월’…국내 최초 달 탐사선 성공의 그늘
로펌 규모 키우며 대응 나선 항우연 “‘연구수당=임금’ 인정 못해”
연구원들 “처참한 급여 수준과 열악한 처우…사기 곤두박질”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국내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 개발 연구원들의 5개월 분 연구수당 미지급 소송이 결국 대법원으로 갔다. 2020년 소송 제기 후 1·2심에서 내리 승소한 연구원들은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판결 불복에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다.
22일 항우연과 법조계에 따르면, 항우연의 '달 탐사 사업단'에 참여했던 연구자 등 16명은 2020년 4월 대전지방법원에 항우연을 상대로 연구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중 연구수당에 대한 임금성을 인정해 항우연에게 수당을 지급하도록 선고했다. 그러나 항우연은 1억300만원(1인당 약634만원)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며 수임료 1억6500만원을 지불해 김앤장을 선임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원고 측 연구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구원들은 "항우연 연구원들의 처참한 급여 수준과 열악한 처우가 드러난 상황"이라며 "사기가 곤두박질 친다"고 비판했다.
"2019년 1~5월까지는 중단기간" 연구원들, 일방적 통보 받아
법적 다툼은 다누리의 연구개발이 2019년 1~5월 설계 문제로 인해 연기되면서 촉발됐다.
'달 탐사 개발사업'은 2016년 1월 착수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가 주관하고 한국연구재단이 관리 및 평가, 항우연이 수행한 다년도 국가연구개발 과제다.
연구가 한창 진행될 시기인 2017년 1월부터 항우연 내부에서는 사업단장과 연구원들 간 상세설계에 관한 이견이 불거졌다. 다누리 중량이 계획보다 증가해 연료 부족 문제가 발생했고, 당초 계획한 궤도에도 변경사항이 생긴 것이다.
송재훈 항우연 책임연구원 박사이자 소송 원고는 "이 과정에서 사업단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과 비상식적인 의사결정이 지속돼 항우연 측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바 없었다"고 했다.
결국 2018년 9월 '달 궤도선 상세설계 확정'을 앞두고 항우연 내부에서 지적됐던 설계 문제가 언론에 드러났다. 이에 과기부와 한국연구재단은 2019년 1월 '외부 점검평가단'을 발족시켜 사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했다. 이때 한국연구재단은 항우연과 2019년도 연차협약 체결을 하지 않고 같은해 7월이 돼서야 체결했다.
당시 항우연 연구자들도 문제해결에 나섰다. 이상률 당시 부원장(現 항우연 원장)을 주축으로 '달 탐사 사업관리위원회'(2018.11~2019.3)가 꾸려졌고 2019년 3월 기술적인 결과를 도출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전기, 기계, 심우주지상국 등 각 분야 참여연구원들은 중단없이 연구업무를 진행했다.
그러나 송 박사는 "2019년 5월, 사업단장이 차년도 예산 심의를 위한 회의에서 과기부 측을 만난 뒤 돌연 '오늘부터 예산 집행 중지됐다'라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같은 해 6월에는 '2019년 1~5월까지는 사업 중단 기간'이었다는 내용을 포함한 '달 탐사 사업 4차년도(2019) 시행계획'이 확정됐고, 이는 과기부가 주관한 '달 탐사 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안건에 상정됐다. 여기에는 인건비 7억1000만원, 간접비 4억4000만원, 연구수당 1억4000만원이 삭감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송 박사는 "통보를 받고 설마했는데 2020년에 정말 7개월분의 연구수당만 지급됐다"며 "4차년도 종료 전까지 과기부에 사업중단 결정을 번복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밭→태평양→김앤장' 로펌 규모 키우는 항우연, 이유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항우연은 1심에서 대전 유명 로펌 '한밭', 2심 '태평양'에 이어 3심서 '김앤장'을 선임했다. 이들이 거액의 변호인단 수임료를 지불하며 주장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항우연 측은 연구수당을 '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연구수당의 목적은 과제에 참여한 연구원들에 대한 보상과 장려금이기에 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2심 때는 원고들에게 "연구수당이 '임금'이 아니라고 인정해주면 연구수당과 그동안 쌓인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고와 항우연 노조가 해당 조정을 거부했다.
임금성이 인정되면 퇴직금 산정에도 영향을 끼쳐 향후 정부 재정 부담도 커질 것을 우려했다. 항우연 관계자는 22일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연구수당이 임금으로 인정되면 다른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등 파급효과가 우려돼 어쩔 수 없이 3심까지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임금성 인정 여부 때문에 상고한 것이지 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항우연 측은 설계 문제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5개월은 '사실상 사업 중단기간'이라고 주장했다. 항우연은 "과기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시에 따라 해당 기간의 연구수당을 계상하지 않은 연차계획서를 작성했다"며 "협약에 근거해 원고들에게 연구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1심과 2심 판결은 연구수당의 임금성을 인정했다. 연구수당 계상 여부에 대해서도 재량이 아닌 협약기관의 의무라고 판단하며 각 연구원들이 연구수당을 지급받는 것이 관행으로 확립했다고 판단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중 연구수당의 임금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또 2심 법원은 협약 체결 지연 기간 5개월에 대해서 "사업기간이 변경된 2016년, 2018년, 2020년에 각각 '다년도 협약' 체결과 동시에 매년 '연차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2019년에 공식적인 연구개발 중단 조치가 없었기에 2019년 연차협약 체결이 없었더라도 2018년의 다년도 협약이 유효하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연구원들은 두 번의 승소 판결에도 기뻐할 수 없는 모양새다. 원고 측은 "달탐사 사업을 함께 했던 당시 부서장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2심 승소로 사건이 종결되리라 기대했다"며 "그런데 항소 때는 태평양을 선임하더니 이번에는 수억원대 수임료를 지출해 김앤장까지 등판시켰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항우연의 상고 결정 배후에 과기부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과기부 관계자는 "연구원들과 항우연 당사자 간 민사소송 문제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항우연 측이 1·2심 때 각각 선임했던 로펌의 의견을 듣고 자체적으로 결정했고 (과기부에게는) 통보만 했다"고 전했다.
또 연구수당의 임금성 보장 논란에 대해서는 "상위 기관이 의견을 내는 건 재판부 입장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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