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문 대학을 갖는 꿈
유학을 준비 중인 청년이 어떤 대학에 가면 좋을지 물어왔다. 필자는 총장이 오래 재임하는 대학을 우선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은 총장 직선제를 택하고 있으며, 대학 총장 임기는 4년이다. 즉, 연임이 쉽지 않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 심한 대학에서 직선제 총장이 4년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한국 대학에서 신임 교수 채용 시 가장 결정적인 잣대는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피인용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남보다 많은 논문을 싣는 것이다. 이런 기준 때문에 대학원은 논문 공장으로 바뀌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은 이런 잣대가 우리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 공과대학 석사과정에 다니는 한 청년은 본인의 지도교수가 석사 학생의 논문은 지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팩트 팩터가 낮은 저널의 논문은 연구 성과로 인정하지 않는 학교 방침 때문에 훈련된 박사과정 학생의 논문만 지도한다고 한다. 우리 대학의 교수 임용 기준은 이렇듯 교육에 진심인 교수를 발굴하는 데 부적합하다.
역사가 긴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경우는 대학 설립자이거나 설립에 동참한 이가 초대 총장을 오랫동안 했다. 그들은 학과를 설립할 때 당대 최고의 학자를 데려오려는 욕심이 컸다. 학과의 첫 교수가 될 사람의 학문과 인격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들은 후 설립자가 직접 면담하고 능력에 맞는 대가를 지원했다. 시대 상황으로 미뤄 일제강점기에 교육받은 이들이 학과의 초대 교수가 됐다. 이렇게 설립자가 데려온 첫 번째 교수가 다시 학과의 각 전공 교수를 데려와 교수진을 구성했다. 이들은 대개 일제강점기에 징집을 면제해 준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당대의 천재였고 동시에 유복한 가문의 꼿꼿한 선비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문과 인격이 당대 최고인 선비 교수들로 학과를 구성했다.
공학은 실용과 이론, 기술과 과학이 결합한 학문이다. 일본 제국대학 공학 교육은 실용과 기술이 이론과 과학보다 강조된 교육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초기 공학 교육은 실용 교육이 됐다. 이후 1971년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에는 196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매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등 미국 명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이 애국심으로 귀국해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미국의 공학은 기술보다는 과학과 이론에 치우친 교육이었고 당시 학생들에게 학문의 열정을 자극했다. 카리스마를 가진 설립자 총장에 의한 교수 임용 절차와 애국심 넘치는 지도자가 주도한 1970년대 한국과학원 교수 임용은 지금 세계 명문 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교수 임용 절차에 가장 가깝다. 학생 교육에 진심인 석학과 지도자가 교육에 진심인 교수를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교과서를 쓸 수 있는 정도 학문의 깊이가 있고 동시에 학문하는 자세도 우러러 본보기가 되는 이들은 그 자체가 권위다. 이들이 교수 후보자의 논문을 읽고 질문해 후보자 학문의 깊이와 학문하는 자세를 판단하면 그것이 곧 당락을 결정하는 게 세계 명문 대학의 교수 채용 방식이다. 그리고 이들이 판단해 쓴 추천서 역시 타 기관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권위가 인정된다. 이처럼 세계 명문 대학에서는 학문의 정점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석학의 판단을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결국 무엇이 세계적인 명문 대학을 만드는가. 대학의 수준은 교수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 학문에 깊이가 있고 학문하는 자세가 바른 교수, 그리고 학생의 교육에 진심인 교수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 제도가 교수 채용 심사 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등재 논문을 요구하고 또 임팩트 팩터가 높은 저널에 싣는 객관적인 잣대를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이어서는 안 된다. 역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제대로 된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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