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글이 되는 음악] 설득으로 공연 산업 정상에 오른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올해 6월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와 관련,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마가리티스 시나스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며 의외의 인물을 호출했다. “같은 청년보다 청년들을 잘 동원할 수 있는 이는 없다”며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단순히 이 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나스 부의장은 “스위프트가 2023년 9월 소셜미디어(SNS)에서 미국의 청년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요청하자, 하루 만에 3만5000명이 투표 등록을 마쳤다”며 그녀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2023년 연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스위프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 기획이 시작된 1927년 이래 아티스트가 작품 및 공연 활동만으로 선정된 첫 사례다. 2005년 U2의 보노가 선정된 것은 음악 활동보다는 빈민 구제 등 사회 활동에 기인했었다. 그마저도 빌 게이츠 등과 공동 선정이었다. ‘타임’은 스위프트를 선정한 이유를 “올해(2023년) 너무 많은 실패와 분열로 어두웠던 세상에서 스위프트는 국경을 초월한 빛이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2023년 스위프트는 무엇을 했을까. 투어다. ‘디 에라스(The Eras)’라 이름 붙여진 이 투어는 2006년 데뷔 이래 스위프트가 행한 모든 투어의 기록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공연 산업 역사의 많은 기록을 경신하는 대장정이기도 했다. 2022년 11월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2023년 3월 17일부터 시작된 디 에라스는 애초 27회만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티켓 오픈과 동시에 미친 듯한 예매율을 보이면서 8회 추가 발표를 거쳐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52회가 진행됐다. 그리고 2024년 연말까지 유럽, 아시아,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총 151회의 일정이 잡혔다. 물론 여기서 더 추가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기본 세트 리스트가 45곡이니, 얼추 회당 4시간씩만 잡아도 공연마다 모든 걸 쏟아내야 하고 그걸 2년 가까이 이끌고 가야 한다. 그야말로 역대급 투어고 그만큼 역대급 기록을 쌓고 있다. 이 투어로 인해 스위프트는 롤링 스톤즈, U2가 보유하고 있던 역대 최고 공연 수익을 경신했을 뿐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여성 아티스트가 됐다. 2023년 한 해 기록만으로도 이렇다. 2024년을 포함한 이후의 기록을 더하면 역대 최고 공연 수익을 스스로 깨뜨리고,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아티스트 자리에 오를 게 확실하다. 이 힘은 음악 산업에만 미치지 않는다. 공연을 보러 장거리 여행을 불사하는 관객이 많다 보니 숙박과 요식업, 쇼핑과 관광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모든 투어가 2만 석 이상을 보유한 아레나급이라 그렇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일러 노믹스’라는 신조어로 디 에라스의 경제 효과를 정의했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역대급 투어인 만큼 가는 곳마다 엄청난 파급력과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부분의 투어가 미식축구장, 아레나 규모이다 보니 투어가 열리는 도시에 수많은 팬이 방문하고, 그로 인해 지역경제가 일시적으로 부흥하고 있다. 팬들이 방문한 도시에서 호텔, 요식업, 쇼핑, 관광, 교통 등에 지출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지 ‘포천’은 스위프트 팬들이 미국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46만달러(약 6조원)로 추산했다. 6회 공연이 열린 로스앤젤레스에 42만 관객이 방문, 평균 1300달러(약 17만원) 이상을 소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디 에라스가 미국의 관광과 레저 산업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으로 돌려놨다고 발표했다. 이글스, 롤링 스톤즈, U2 등 투어 산업의 거인들에게서도 보이지 않았던 반응이다. 그만큼 파생 효과가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니 미국의 주지사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상들이 자국에서도 디 에라스를 열어달라고 나서는 게 놀랍지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반문할 수 있다. 팝의 역사를 써온 슈퍼스타들과 스위프트는 무엇이 다르기에 이 정도로 세계가 열광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가 구축해온 서사에 주목하고 싶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부터 에미넘, 켄드릭 라마까지 반세기 이상 음악 역사를 바꿔온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소수자·비주류 서사’가 있었다. 노동자 하류층 출신, 빈민가 흑인 출신, 결손 가정 출신 등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가 동시대 비주류 음악을 통해 스타에 오르고 비주류를 새로운 청년 문화로 만드는 과정이었다(방탄소년단에게도 동양인이라는 배경, 그들의 초기 미국 팬덤이 비주류 10대였다는 서사가 붙는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그걸 역행한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 출신이다. 17세의 나이로 1986년 데뷔했을 때의 장르는 컨트리, 완고한 미국 보수층 백인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음악이다. 한국으로 치면 여고생이 트로트로 데뷔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기획사나 매니저의 전략이 아닌 스위프트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2집 ‘피어리스’부터 서서히 탈컨트리로 방향 전환을 거쳤고, 3집 ‘스피크 나우’는 완성도 높은 팝을 전곡 직접 작사·작곡하며 동세대 여성 팬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5집 ‘1989’는 15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피어리스’에 이어 두 번째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안는 기록적 성공을 거뒀다. 20대 중반 여성 싱어송라이터(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여성’을 안 써도 좋으리라)가 오른 적 없는 고봉에 이미 오른 것이다. 이후로도 빌보드와 그래미가 모두 사랑하는, 말 그대로 ‘미국의 연인’이었던 스위프트가 아티스트로서 완성된 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투어는커녕 일상이 정지됐던 당시, 그녀의 선택은 편안하게 인스타그램으로 라이브를 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았다. 더 내셔널, 본 이베어 등 인디 록 뮤지션들과 손잡고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사전 홍보 없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일 발매를 알린 ‘포크로어’와 ‘에버모어’에는 포크와 인디 록 성향의 음악이 담겼다. 가장 내면적이고 가장 외로운 음악은 팬데믹 첫해, 우리가 느꼈던 절망과 고독이 사운드와 이야기로 승화됐다. 먼 훗날 인류가 팬데믹 시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음악적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면 이 두 장을 내밀고 싶을 만큼, 시대가 담긴 앨범이다.
컨트리와 팝 그리고 인디까지 15년간 스위프트가 걸어온 방향은 비주류-주류-동어반복의 길이 아닌 가장 보수적인 곳에서 출발해 가장 진보적인 곳에 이르는 전인미답의 루트였던 셈이다. 그래미와 빌보드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힙스터들까지 굴복시킨 조용한 승리의 길이기도 했다. 디 에라스의 기록은 혁명 대신 설득으로 정상에 오른 스위프트의 훈장 같은 것이다. 대장정이 끝난 후 다시 한번 음악 산업, 아니 여가 산업을 바꾸게 될 현재 진행형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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