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속 밤샘해도 ‘법 위반’ 아니라는데.. “주 40시간만 맞추면 문제 없어” vs “하루 21시간 이상, 초과 노동도 합법”
위반 여부.. ‘1일’ 아니 ‘주 40시간’ 기준해야
“장시간 근로 해소” vs “건강권 보호 위배”
종전 법정 근로시간으로 알던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여기에 더해 ‘연장근로=1주 12시간’이란 틀 적용 기준이 달라질 전망입니다. 연장근로를 지켰는지 여부를 따질 땐,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됐습니다.
정부가 연장근로 여부를 ‘하루 8시간’이 아닌 ‘주당 40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주 52시간제 위반 여부를 ‘하루’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따지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입니다.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쉴 수 있어 교대근무가 많은 제조업 등 업종별로 근로 유연성이 확대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지만, 한편에선 오히려 행정해석 변경이 장시간 노동의 길을 터준 것이라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2일 ‘연장근로 한도 위반 기준’에 대한 행정해석을 이 같이 변경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 7일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0조에선 법정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제53조1항은 당사자 간 합의하면 1주 12시간을 한도로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하루 8시간’ 또는 ‘1주 40시간’을 초과해 일할 경우, 즉 주 전체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할 때뿐 아니라 하루 8시간을 넘는 연장근로시간을 합쳐 총량이 주 12시간을 넘길 때도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봤습니다.
실례로 하루 13시간씩(법정근로 8시간+연장근로 5시간) 3일 일하는 직장인 A씨가 1주 총 근로시간이 39시간으로 52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해도, 종전 같으면 연장근로시간(15시간)이 1주 12시간을 초과해 법 위반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주 12시간’을 웃도는지 여부를 ‘1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삼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하루 몇 시간’ 근무가 아닌, 1주 간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는지 총량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법은 “근로기준법 제53조1항이 1주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1일 연장근로 한도까지 별도 규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이에 따라 고용부도 “대법 판단에 따라 ‘1주 총 근로시간 중 1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이 연장근로이며, 이 연장근로가 1주 12시간을 초과하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기존 행정해석을 변경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달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업자에 대해 “연장근로 초과는 1일 8시간을 초과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관련해 고용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현장 노사,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고, 법의 최종 판단 및 해석 권한을 갖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행정해석을 변경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해석 변경은 현재 조사 또는 감독 중인 사건에 곧바로 적용됩니다.
단, 연장근로수당 지급 기준은 기존 해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선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방침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관련해 경영계는 연장근로 계산법이 바뀌면서 교대 근무가 많은 제조업이나 IT, 운수창고업 등이 탄력적인 근로시간 운용에 보탬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연속 야근이나 밤샘 근무를 하더라도 주 단위 기준만 지키면 법에 어긋날게 없기 때문입니다. 특정 요일 더 일하면서, 다른 날 쉴수 있는 식으로 운영하는 등 방법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노동계 등은 행정해석 변경을 따를 경우 이론적으로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최대 21.5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해졌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마다 1시간씩 주어지는 두 차례의 휴게시간과 연장근로 휴게시간 30분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정부가 '집중노동'의 시대를 선언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변경된 기준을 요약하면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더라도 주당 최대 노동시간에만 미치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라며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민노총은 “주 4일제 논의가 진지하게 시행되고 있고 과도한 노동량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숱하다”며 “정부와 법원이 노동시간을 늘리고 이를 핑계 대기 위해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는 것은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을 넘어 인간다운 삶과 생활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반(反)인권적인 행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고용부도 이번 기준 변경을 발표하면서 ‘(노동자의) 건강권 우려가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면서 “집중 적인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이번 기준 변경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위해를 가한다는 것을 이미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노총도 논평에서 “이번 발표는 사용자들에게 연장근로시간 몰아쓰기가 가능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국민들의 반대로 잠시 주춤했지만 이 정부가 몰아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압축노동’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성토했습니다.
나아가 “악용될 경우 하루 21.5시간까지도 압축노동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이토록 신속하게 행정해석을 변경하는 고용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연장근로에 대한 현장의 혼란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국회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입법 입법보완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대법원 판결의 근본 원인은 근로기준법상 1일 총근로시간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법의 구멍 때문”이라며 “이 문제는 결국 근로기준법상 1일 근로시간 상한과 24시간 중 11시간 연속휴식권 도입이 되어야 끝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번 판결로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경직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지만, 건강권 우려도 있는 만큼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자 건강권을 보호하면서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다음 달 개최 예정인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장시간 근로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근로시간 유연화와 근로자 건강권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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