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하저'에도 재정 조기집행···물가 뛰면 금리인하 늦어져 '이중고'
상반기 2.2% 하반기 2% 성장 예상
정부, 6월까지 올 예산 65% 투입
경기 둔화땐 쓸돈 없어 추경 불가피
물가 올라도 유동성發 금리인하 난항
재정 바닥에 침체 폭 깊어질 수도
올해 한국 경제는 상반기 경기가 반등하고 물가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다가 하반기 이후 경기가 위축되면서 물가도 점차 안정되는 ‘상고하저’의 흐름이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에는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운용하다가 하반기 이후 경기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정부는 상반기 조기 재정 집행에 속도를 내겠다고 하면서 돈을 풀어 내수를 부양하고 있다. 물가를 먼저 잡겠다는 통화 당국의 입장과 배치된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국회에서 감세와 각종 예산 지원 사업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는 감세 규모만 약 4조 3000억 원에 달한다. 저출생 지원 규모도 여당은 매년 3조 원, 야당은 매년 28조 원을 제시했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들이지만 전체적인 기조가 재정 지출 확대라는 점은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문제는 경기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2024년 경제 전망’을 보면 올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1%로 상반기 2.2%, 하반기 2.0%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이후 경기가 점차 위축되고 금리 인상 효과가 나타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상반기 3.0%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다가 하반기 2.3%로 낮아진다. 한은은 이르면 올해 말쯤 물가가 2%대 수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반대다. 상반기는 경기가 개선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는 상반기에 연간 계획 예산 560조 9000억 원 가운데 65%인 350조 4000억 원을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예년 수준(60%)을 크게 뛰어넘는다.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 24조 2000억 원 가운데 역대 최대인 65%(15조 7000억 원)를 상반기 투입할 방침이다. 한은이 저금리로 대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중개 지원 대출 한도 유보분 9조 원을 취약 업종이나 지방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것도 대표적인 돈 풀기다.
정부의 예산 조기 집행은 연말 예산 집중이나 불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매년 추진됐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예산 조기 집행은 하반기에 경기가 나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상반기를 버틸 때 효과가 커진다. 하반기에도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상반기에 재정 여력을 모두 써버려 이후 경기회복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서는 이대로라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당장 소비가 좋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06.6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였다. 이 기간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3년(-3.1%) 이후 처음이다. 선거를 의식해 돈은 돈대로 쓰고도 하반기 경기 둔화와 세수 감소에 나랏빚을 더 얻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재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대규모 SOC 사업 유치가 지역구 국회의원 재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조기 집행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면 제도 운용에 따른 비용 소요 등 부작용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상반기 세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을 조기 집행하면 일시적인 자금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때 재정증권을 발행하거나 한은 일시차입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자비용이 발생한다. 지난해 정부의 한은 일시대출금 사용 규모는 117조 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다. 이로 인한 이자비용도 1506억 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착륙을 막겠다며 건설 경기 부양에 나선 것도 물가 안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 폭을 100조 원 이내로 관리한다는 계획인데 부채가 늘어날수록 신용 창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시중에 돈이 풀려 물가 잡기가 어려워진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물가 안정 기조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현장의 정책은 따로 가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도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한은의 금리 인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경기둔화의 폭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 내부에서도 하반기 경기가 생각보다 더 나빠지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올해도 2%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상반기 세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 65%를 조기 집행을 하겠다고 하는데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부터 설명이 필요하다”며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물가 2%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놓고 내수 진작을 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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