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도 목격자도 없다 … 죽음의 진실은
칸 황금종려상·골든글로브 수상
의문의 추락사로 떠난 남편
한순간 용의자로 지목된 아내
시각장애 아들이 겪는 비극
한 가정을 둘러싼 법정심리극
새하얀 설원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한 한 남자. 자택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제대로 본 이는 없었다. 시각장애를 지닌 아들과 안내견이 그를 발견했을 뿐. 부검 결과도 남자의 추락사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인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는 왜 추운 한겨울, 그곳에서 더 차갑게 식어버린 걸까.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추락사로 한순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의 이야기를 담은 법정심리극이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이 작품은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비영어권 작품상을 수상해 2관왕을 달성했다.
주인공 산드라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 서고, 남편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듯했던 한 가정은 1년여의 법정 다툼 과정에서 낱낱이 민낯을 드러내고 처참히 붕괴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산드라의 아들 다니엘이다. 네 살 때 불의의 사고로 시신경을 다쳐 앞을 잘 보지 못하게 됐지만, 영화는 다니엘의 눈과 귀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하나씩 파헤쳐나간다. 그 과정은 끔찍하고 가슴 아프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사망한 시각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산드라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확실한 살인의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 점점 더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의문은 더욱더 커진다.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도 산드라의 얼굴엔 줄곧 슬픔이 비치지 않았다. 그저 힘들어 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경찰 조사를 받는 아들에게도 산드라는 뻔뻔하게 "기억을 바꿀 필요는 없다"며 "기억하는 대로만 말하면 된다"고 당부한다.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는 건 남편의 죽음 전 부부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부터다. 두 사람은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독일 출신의 산드라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남편은 아들의 사고 이후 대학 교수직까지 그만둘 정도로 힘들어 했다. '내가 아들을 직접 데리러 갔다면' 아들이 눈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홈스쿨링을 하며 아들을 돌보며 일을 병행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남편의 제안으로 이들은 그의 고향인 프랑스의 한적한 마을로 이주한다.
하지만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아픈 아들과 무기력한 남편으로 일상에 지친 산드라는 작가를 꿈꾸는 여성들과 잠자리를 하며 일탈을 일삼았다. 아내의 외도에 무기력한 남편은 더 망가져갔다. 직장을 관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던 남편이 소설 한 편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산드라는 그런 남편이 더 밉고 한심했다. 시력을 잃은 아들의 비극적인 사고도 남편 탓인 것만 같았다.
이처럼 '추락의 해부'는 남편이 사망한 시점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감춰져 있던 이들의 갈등과 비극을 세세히 보여준다. 앞을 볼 수 없는 아이의 귀와 마음에 새겨진 어렴풋한 기억들과 긴장감이 감도는 피아노 선율, 그날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들까지…. 모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들이고 부부간의 갈등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연민, 죄책감 등은 저마다 다르지만 비슷하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산드라는 남편의 뜻을 따라 먼 나라 프랑스에서 고군분투하며 적응해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는 "혼자 덫에 갇힌 것"이라고, "자기 고통을 다니엘에게 투사하는 게 싫다"고 비난한다. 아들에게는 "엄마 괴물 같은 사람 아니야. 왜곡된 거야"라고 호소한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기나긴 다툼 끝에 최종 판결이 난 이후, 자리에 누운 산드라. 그의 얼굴엔 비로소 슬픔이 드리웠다. '추락의 해부'는 범인도, 목격자도 없는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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