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임신상담 18만명' 센터 지원끊은 정부…"출산율 비상 맞나"

김길원 2024. 1. 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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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세이프센터, 임신부 2만4천명 상담해 35% 중절 예방…정부, 협의없이 지원 중단"
[보건복지부 공고 캡처]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 다문화 가정의 주부 A(28)씨는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듣고 정밀검진을 위해 조영제를 이용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하지만 이후 생리가 없어 간이 임신 진단 테스트기로 검사해보니 임신 진단이 나왔다. 바로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6주 차 아이에게서 심장이 뛰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쁨도 잠시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의 낙태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임신 중 CT 촬영 때 아이가 방사선에 노출됨으로써 기형아 출산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멘붕'에 빠져 인터넷 정보를 뒤지던 A씨는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는 한국마더세이프센터에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 상담을 받았다. 센터에서는 'CT에 의한 방사선량은 0.01mSV(밀리시버트) 미만으로 방사선에 의해 기형이 발생할 수 있는 역치 용량 50mSv보다 훨씬 적고, 사용된 조영제도 태아 기형과 관련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답변에 A씨는 아이를 낙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고, 현재까지 건강한 아이를 임신 중이다.

#. 공황장애를 앓아온 주부 B(36)씨는 임신하고 싶어도 그동안 복용해온 약물(알프라졸람, 인데놀)로 인한 걱정이 컸다. 약을 먹자니 약으로 인한 기형이 걱정되고, 약을 먹지 않으려니 공황장애로 숨쉬기가 힘들어져 응급실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B씨는 마더세이프센터에 전화해 상담받았다. 센터에서는 현재 복용 중인 공황장애 약물의 자연 유산율을 높일 수 있지만 기형을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신 전, 임신 중에도 이 약들을 먹으면서 임신을 유지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황장애가 재발함으로써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B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민 끝에 센터에서 상담받았는데 이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면서 "현재는 약물을 계속 복용하면서 임신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마더세이프센터는 임신부에게 약물에 의한 기형 발생 관련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잘못된 약물 정보로 인한 임신중절을 예방하기 위해 1999년부터 운영됐다. 이후 낙태와 관련한 찬반이 사회적인 논쟁거리가 되면서 2010년부터는 보건복지부의 재정 지원으로 마더세이프상담사업(위기임신상담사업)으로 불리며 콜센터를 운영해왔다.

우리보다 앞서 설립된 미국의 마더베이비(Mothertobaby), 유럽의 기형정보서비스네트워크(ENTIS), 호주의 마더세이프(Mothersafe)와 유사한 역할이다.

센터에 따르면 설립 이후 지금까지의 상담 실적(2024년 1월 17일 기준)은 2023년 2만4천60명을 포함해 총 18만명 이상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5천명 이상의 임신부에게 전화와 소셜미디어(SNS) 등의 비대면으로 코로나19 감염 및 백신 관련 안전성 정보가 제공됐다.

[마더세이프상담센터 제공]

센터 설립과 운영을 주도해 온 한정열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임신부 2만4천명을 상담해 35%의 임신중절 예방효과를 얻었으며, 결과적으로 8천명 이상의 생명을 살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이 사업에 지금까지 지원한 예산은 12억원이다. 사람 한 명이 태어나서 80세에 사망했을 때 약 12억원의 생산 유발효과가 있다는 가설에 대입해보면, 지금까지 8천명을 살려 8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임신과 관련한 중요 정보를 제공하며 출산율 제고에도 기여해온 마더세이프센터가 올해부터 갑자기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위기임신 전문상담센터 운영'(사업비 2억7천만원)과 '성·피임 및 교육 홍보'(5억4천200만원)에 각기 독립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두 사업과제를 '성·생식건강증진사업'(7억3천600만원)으로 통합하고 새롭게 사업자를 공모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복지부가 마더세이프센터와 아무런 사전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정열 교수는 "복지부가 1월 17일에 공고문을 낸 것을 보고 사업이 통폐합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지금까지 센터가 임신과 출산에 기여해온 측면을 고려한다면 전문가와 상의도 없이 어떻게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사업이 통폐합되면서 피해는 당장 임신부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센터가 사업 공고일부터 하루 80건가량 들어오는 콜센터 상담 업무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복지부에서 지원받는 2억7천만원의 예산으로 전문 상담직원 3명의 인건비와 사업비를 근근이 충당했지만, 이제는 예산 지원 중단으로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어 상담을 이어 나갈 수 없다는 게 센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지난해 마더세이프센터에 대한 감사에서 사업비 중 일부(1천200만원)를 대외홍보비로 전용한 사실이 드러나 올해 사업에서 배제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김영주 회장(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정부가 각종 임신·출산 지원정책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도 현장의 목소리는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임신과 관련한 약물 상담은 전문지식과 데이터가 중요하기 때문에 통폐합 후 다른 단체에서 새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상담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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