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예술을 노리는 은밀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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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순수한 혈통의 민족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나치의 이상에 맞지 않는 예술을 '퇴폐 미술'로 규정하고, 발본색원한다며 몰수한 뒤, 따로 모아 '퇴폐 미술전'이라는 제목으로 순회 전시를 열었다.
반면 나치의 선전선동에 동참한 예술가들은 승승장구했다.
예술은 늘 당대의 체제와 현상을 전복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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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미치는 막강한 힘때문
현대사회 직접적 검열없지만
행정지원 등으로 장악 시도
히틀러는 순수한 혈통의 민족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나치의 이상에 맞지 않는 예술을 '퇴폐 미술'로 규정하고, 발본색원한다며 몰수한 뒤, 따로 모아 '퇴폐 미술전'이라는 제목으로 순회 전시를 열었다. 전시 후에는 이 작품들을 불살랐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대중의 증오심과 혐오감을 유발하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독일 국민의 일상 속에 침투시키기 위해서였다.
'퇴폐 미술'에는 20세기 초에 꽃을 피운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이 모두 포함되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은 조국을 떠나 망명을 택해야 했다. 반면 나치의 선전선동에 동참한 예술가들은 승승장구했다. 이데올로기 선전을 목적으로 창작한 작품들을 모아 '위대한 독일미술전'을 열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로 기록된 이들은 모두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이었다.
예술과 정치, 권력과 예술의 관계는 태생적으로 긴밀하다. 예술은 늘 당대의 체제와 현상을 전복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권력은 늘 예술을 통제하고 이용하고 싶어 한다. 예술이 갖는 막대한 힘 때문이다. 오죽하면 기원전 플라톤이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시인과 극작가를 추방해야 한다고 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 이상 예술에 대한 직접적인 검열이나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대신 권력은 재정적·행정적 지원 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예술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봄, 한 지자체 산하의 시립미술관에서는 이 지역 활동 화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대표적 공공 미술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개인전이라는 점도 파격이자 논란이었지만 더 큰 논란은 그다음이었다. 개막 일주일 뒤 작품 한 점이 교체됐다. 새로 걸린 그림은 '초상 2023'이라는 제목의 해당 지자체장의 초상화였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지난해 말 공석이던 미술관의 관장 자리에 이 화가가 임명됐다. 이 화가는 관장 임명 권한을 가진 지자체장의 중·고교 동기이자 막역한 친구 사이로 과거 칼럼을 통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가장 적임자"라며 지자체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같은 날 임명된 또 다른 시립미술관장 자리에도 해당 지자체장의 대학 동창이 임명됐다. 미술계는 반발했다. 각 지자체는 법적·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렇다. 지금 난리가 난 것은 법이 아니라 예술이다.
예술가들이여, 혹시 모르니 초상화를 많이 그려 두자. 누구를 그리면 되냐고? 눈치껏! 잘 그리지는 않아도 된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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