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짜 기관계좌로 공모주 청약 유도···세무사도 속은 '사기 투자앱'
수치조작 수익 발생한것처럼 꾸며
유력 정치인·연예인 등 사칭 광고도
일부 투자자 수억원 넣었다 낭패
세금·수수료명목 추가입금도 유도
피해 금액만 최소 100억 달할 듯
지난해 은퇴한 60대 A 씨는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 투자를 고심하던 중 한 사설 증권거래소로부터 기관투자용 계좌를 통해 ‘투자금을 수십 배로 불려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A 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소액 투자 결과 실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한 뒤 수천만 원을 해당 증권거래소 자체 애플리케이션에 입금했다. 그는 공모주 청약으로 수십억 원의 이익금이 찍힌 앱을 보고 기뻐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해당 앱은 자체적으로 수치 입력이 가능한 가짜였으며 A 씨가 실제 벌어들인 돈은 ‘0원’이었다. A 씨는 “수익금은커녕 투자금조차 회수하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체 앱을 이용해 공모주 청약을 진행하면 수백 배의 수익을 볼 수 있다며 투자를 유도하는 신종 사기가 등장했다. 이들은 앱에 표시되는 수치를 조작해 마치 실제 청약으로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꾸민 뒤 투자금을 가로챘다. 현재까지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들만 100명 이상으로 피해 금액은 최소 1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들어 서울경찰청과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가짜 투자 앱 관련 사기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장이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S증권거래소’와 ‘Y증권거래소’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단체로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경찰은 일부 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S거래소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 “유명 저자가 집필한 주식 관련 책자를 제공하겠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글에 댓글을 작성한 뒤 해당 거래소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거래소 측은 일단 ‘리딩 서비스 체험비’ 등 명목으로 투자자들에게 20만 원가량을 지급해준 뒤 소액의 수익금을 입금해주며 신뢰를 쌓고 추가 수익을 명목으로 ‘선구자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이들은 선구자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금융권에서 접근이 가능한 ‘기관계좌’를 통한 공모주 청약 우대, 상한가 주식 구매, 시간외거래 등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수치 조작이 가능한 자체 앱 설치를 유도했다.
이들은 실제 공모주를 이용했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12일 LS머트리얼즈가 코스닥에 상장되자 관계자들은 “자체 거래소 앱에서 공모주를 청약하라”며 대포통장으로 투자금을 입금받았다. 해당 앱 화면에는 입금된 금액만큼의 숫자가 표기됐다. 공모주 청약이 시작되면 수백에서 수천 주에 당첨된 것처럼 수치가 올라갔으며 일부 투자자는 10만 주를 청약해 3000주 이상 확보된 것처럼 나타나기도 했다. LS머트리얼즈가 ‘따상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형성된 뒤 2거래일 연속 상한가)’에 성공하자 투자자들의 수익금은 수십억 원까지 치솟은 것으로 표기됐다.
이후 투자자들이 출금을 요청하자 관계자들은 “세금이나 수수료를 내야 한다”며 추가 입금을 유도했다. 입금이 늦어지면 ‘3일 이내에 계좌가 동결된다’ ‘투자 자문비 미납부로 고소를 하겠다’ ‘연체 시 법무부에 정식으로 인수인계하겠다’며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희망한 수량보다 더 많은 공모주에 당첨됐다는 이유로 추가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14일 “내일까지 출금이 되지 않으면 10배를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고액 투자자들은 수익금은 고사하고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가짜 거래소에 투자했다 손해를 본 사례는 S거래소뿐만 아니다. Y거래소의 경우 투자금 규모별로 그룹을 나눠 수익률 구간을 180~500%로 다르게 책정하는 등 체계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들은 대출을 유도하며 업체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유력 정치인이나 고위 정부 관료, 연예인을 사칭해 광고를 하기도 했다. 해당 건으로 사칭 피해를 당한 한 유명인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조심하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다른 거래소와 동일한 대포통장이 사용된 정황도 발견됐다.
이처럼 주식 투자자들을 겨냥한 사기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리딩을 해주겠다’며 수업료 등 명목으로 입금을 받은 뒤 이를 가로채는 ‘리딩방 사기’가 유행했다. 이후에는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투자를 유도하는 ‘비상장주식 사기’로 변모했다. 최근 등장한 ‘가짜 거래소 사기’는 리딩방으로 시작해 투자까지 이끌어내는 고도화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거래소 앱 또한 매우 정교하게 제작돼 세무사와 교수마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피해자들은 서울경찰청과 경기남부청 등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있으며 일부 건은 영등포경찰서 등에 배당됐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150만 원에서 많게는 4억 원까지 투자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100명 이상에 달한다. 피해 금액은 두 사례만 합쳐서 100억 원 이상으로 파악됐으며 향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투자 사기 구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은행이나 금융감독원에 피해자 구제 신청을 했지만 보이스피싱이 아닌 경우 은행에서 계좌를 정지하기 어렵다. 또 경찰에 신고해도 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피해 구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대부분의 조직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검거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사기 피해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홍림 법률사무소는 “보이스피싱 단체가 검찰청 홈페이지를 똑같이 복사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짜 거래소 또한 실제 증권거래소와 매우 비슷하게 만들어 운영되고 있다”며 “거래소 안에서 시세 등 수치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얼핏 보면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허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공모주 청약 등은 주관 증권사 이외의 증권거래소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투자 권유는 의심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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