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집도, 없는 집도 지갑 닫았다…가계빚·불투명한 앞날 부담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소비 위축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예상보다 경제 주체들이 빠르게 지갑을 닫는 모습이다. 이미 연평균 가계대출 이자비용은 10년새 가장 빠른 속도로 늘며 소비를 제약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도 부동산 시장 투자를 관망하며 저축액을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들어 민간소비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다는 평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11월 전망과 비교해 볼 때 소비 전망치는 소폭 하향조정되고 수출은 소폭 상향조정돼 올해 성장률이 전망치(2.1%)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은이 예측한 올해 연간 민간소비 증가율은 1.9%(상반기 1.5%, 하반기 2.2%)다.
무엇보다 이른바 ‘코로나 이후 보복소비’가 뚜렷이 약해지고 있다. 코로나 방역이 끝나자 경제 주체들은 상품을 사고, 외식에 나섰다. 그러나 자동차, 가전제품 등 내구재는 한번 사면 오래 쓰는 탓에 재화 소비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는 외식 등 서비스 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서비스업 생산은 지난해 10~11월 두 달 연속 전월 대비 줄었다. 소매판매도 10월 감소(-0.8%)했다가 11월 1.0% 증가에 그쳤다.
누증된 ‘빚 부담’이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한은은 지난 18일 ‘민간소비 점검’ 보고서에서 “금리 상승 기조가 2022년 이후 본격화했기 때문에 앞으로 대출이 많은 중·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이자 부담이 확대되면서 소비 여력 개선을 제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이미 2022년 기준 가구당 대출이자비용은 연평균 247만원에 이르렀다. 1년새 18.3%(38만원) 늘었다. 비교 가능한 통계가 시작된 2012년 이후 규모, 증가율 모두 최대치다. 연령별로 40대가 340만원으로 이자 부담이 가장 컸고, 증가율은 65살 이상(30.8%)에서 가장 높았다.
2022년 이후 대출금리가 더 뛰었기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 이자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장 최근 자료인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봐도, 지난해 3분기 기준 가구당 월평균 이자비용은 12만8988원으로 1년 전보다 24.2% 늘었다. 2022년 3분기부터 줄곧 두 자릿수 증가세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도 지갑을 열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가계의 ‘초과 저축’(과거 평균적인 저축 수준보다 더 많이 쌓인 저축액)이 소비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는 점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때 방역으로 소비가 막히면서 중·고소득층에 초과 저축이 쌓였다. 지난해 7월 한은의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 이슈노트를 보면, 2020~2022년중 우리나라 가계가 축적한 초과 저축 규모는 101조~129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00조원을 웃도는 이 저축액은 좀처럼 소비에 쓰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가계 월평균 흑자액은 116만2096원으로 2019년 4분기(99만7240원)를 웃돌고 있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모든 지출을 다 한 뒤 남은 돈으로, ‘저축’과 유사한 개념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가계는 이 돈을 소비 또는 부채 상환에 사용하지 않고 주로 예금·주식 등 언제든 현금화 가능한 금융자산 형태로 보유 중이다. 그 배경엔 부동산 시장 투자 등에 대한 관망세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불확실하니 저축액을 소비에 쓰지 않고 단기예금 등으로 굴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초과 저축이 소비로 나오면 민간 소비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아직 관망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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