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게 삶을 마친 이들의 흔적…신간 '남겨진 것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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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현장에는 법률의 언어에서 일반인이 짐작하지 못한 여러 흔적이 있다.
고독사한 이들이 많이 남기는 것은 빈 술병과 약봉지다.
유품정리사로 활동하는 김새별·전애원 씨가 최근 출간한 '남겨진 것들의 기록'(청림출판)을 통해 알 수 있는 고독사 현장의 모습이다.
고독사한 사람은 말이 없지만 물건이 주인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대신 얘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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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고독사 현장에는 법률의 언어에서 일반인이 짐작하지 못한 여러 흔적이 있다.
방치된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시신이 부패해 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부패물이 흘러나오거나 구더기가 들끓는다.
악취가 너무 심해 이웃들이 놀라기 때문에 현장을 정리할 때 창문을 열어놓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어지간한 물건은 시취(屍臭)가 배 재사용이 어렵다. 고독사한 이들이 많이 남기는 것은 빈 술병과 약봉지다. 몸이 아파도 이렇다 할 치료를 받지 않아 집안에 핏덩이를 토해놓기도 한다.
유품정리사로 활동하는 김새별·전애원 씨가 최근 출간한 '남겨진 것들의 기록'(청림출판)을 통해 알 수 있는 고독사 현장의 모습이다.
고독사한 사람은 말이 없지만 물건이 주인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대신 얘기해준다.
지은이가 수년 전 유품을 정리하러 찾아간 쪽방촌의 한 주택에서 고인이 사용한 방 세 칸은 쓰레기로 가득했다. 현장에 남은 물건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니 고인은 고물을 수집해 팔았다고 한다. 그는 쓰레기에 집안 공간을 다 내주고 문 바깥쪽 골목길에 이불을 펴놓고 자다가 동사했다.
끝없이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는 지금은 어디서 찾아보기도 어려운 천원짜리 구권과 동전을 모은 저금통이 발견됐다. 고인은 찾아오는 자식도 없고 주변에 변변하게 얘기를 나눌 이웃도 없는 삶을 살다가 떠났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가족과의 단절이 고독사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어느 해 가을 지은이가 정리를 맡은 현장에서 고인의 아들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했고 이후 아버지와 연락이 두절됐다'고 사연을 털어놓았다.
먹고살기 바빴던 아들은 한동안 아버지를 찾을 생각을 못 하다 결혼 후 자식을 낳고 살다 쇠약해지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당사자 동의 없이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경찰이 당사자(아버지)의 의사를 확인해 동의하면 연락하겠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자신의 행방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 아버지의 주거지를 찾으려고 했으나 마지막으로 등록된 곳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서 주소가 분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4년을 허비하다 저세상 사람이 된 아버지를 찾게 된 것이다.
고인이 아들과의 접촉을 피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남겨진 물건 속에서는 아들이 군대에 있을 무렵 썼다가 보내지 않은 편지가 몇 장 발견됐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걱정이 절절하게 기록돼 있었다. 너무 늦게 전달된 진심을 접하며 지은이는 이런 교훈을 되새긴다.
"안 그래도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손을 영영 놓지는 말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어머니가 남긴 사랑의 흔적에 자식은 뒤늦게 통곡하기도 한다.
한 중년 여성이 고독사한 반지하 주택에는 냉장고 두 대에 김치냉장고가 있었고 안에는 식재료가 가득했다. 혼자 살지만, 자식들이 오면 챙겨주고 철마다 음식을 보내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집 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어버이날 받은 카네이션과 손주들에게 받은 생일 축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독립해서 어머니 곁을 떠난 자녀들은 술을 안 마신다는 어머니 말을 믿었지만, 집에는 빈 술병이 가득했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고이 간직한 카네이션과 냉장고 내부를 보고 울고 또 울었다.
272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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