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트럼프’ 디샌티스는 왜 ‘트럼프 대안’ 되지 못했나

최혜린 기자 2024. 1. 2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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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퇴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첫번째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뉴햄프셔에서 열리는 두 번째 경선을 앞두고 결국 사퇴했다. 한때 ‘트럼프 대항마’로 불렸지만, 선거운동 과정에서 일찌감치 한계를 드러내며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21일(현지시간) 엑스(옛 트위터)에 영상을 게시해 대선 레이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공화당 경선에 참여하는 유권자 다수가 트럼프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는 게 명확해졌다. 트럼프는 현재 대통령인 바이든보다 우수하다”면서 트럼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디샌티스 주지사의 지지율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30% 가까이 뒤처짐에 따라 이번 사퇴는 예견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디샌티스 진영은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까지 일정을 강행해보려 했으나 결국 선거자금 부족에 발목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생인 디샌티스 주지사는 한때 ‘리틀 트럼프’ 또는 ‘트럼프 2.0’으로 불리며 트럼프의 최대 라이벌로 떠올랐다. 연방 하원의원에 세차례 당선된 뒤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내며 정치 경력을 쌓은 그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 및 마스크 의무화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보수 진영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특히 2022년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예상 밖 열세에도 불구하고 큰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민주당 지지 성향인 히스패닉이 많은 플로리다주를 경합주에서 공화당 우세주로 바꾸는데 성공하면서 단숨에 대권 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이 무렵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디샌티스 주지사는 52%의 지지율을 얻어 트럼프 전 대통령(38%)을 크게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그의 지지율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선거 캠프가 내홍을 겪으면서 대통령으로서의 국정 운영 능력을 의심받는 ‘자질 논란’에 휩싸인 것도 요인 중 하나였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소수의 고문들이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을 운영하고 대표를 네 번이나 교체하면서 직원들이 다수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권자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도 한계로 꼽혔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경선 초반 기성 언론이 자신에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접촉을 피했다. 그의 출마와 사퇴 선언 모두 엑스를 통해 이뤄졌다. 최근에는 디샌티스 주지사 스스로도 “나는 미디어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다”며 “문 밖으로 나와 훨씬 더 넓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일관적인 정치적 메시지와 비전이 부재한 점이 지지층 이탈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CNN은 “디샌티스는 자신이 출마한 이유를 일관성 있게 설득해나가지 못했다”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주지사로서의 과거 업적에만 치중했다”는 점을 한계로 진단했다.

특히 ‘트럼프 대항마’를 자처하면서도 트럼프와의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 패착으로 꼽힌다. 2018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 당시 디샌티스 캠프에서 일했던 여론조사 전문가 휘트 아이레스는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본인이 있는데 트럼프를 대신할 ‘차선책’을 택할 유권자는 없다”고 꼬집었다.

디샌티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 극우 노선을 강화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긴 했으나 이는 오히려 중도 또는 온건보수 성향의 지지자를 포섭하는 데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임신중지권이나 성소수자(LGBTQ+)와 관련한 극우적 발언을 거듭해 미국 내 ‘문화전쟁’을 대선 쟁점으로 부상시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로 디샌티스 주지사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했다는 견해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유권자들이 네 차례의 형사기소를 당했는데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분노를 동력 삼아 강하게 결집하는 상황에서 디샌티스 주지사의 전략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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