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청년들의 꿈, 그 무게…뮤지컬 '일 테노레'[리뷰]

박주연 기자 2024. 1. 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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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테노레' 1막2장_박은태(윤이선 역), 박지연(서진연 역), 전재홍(이수한 역) 외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이젠 제발, 제발 이 고통 멈춰주오. 이 꿈을 죽여주오. 이렇게 가까운데 닿을 순 없는 꿈…."('일 테노레' 잘못된 꿈)

1930년대 경성 부민관. 형의 그늘에 가려져 소심한 성격으로 자란 의대생이 고뇌에 휩싸였다. 조선 최초의 테너라는 꿈을 선택할 것인가,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며 악명을 떨친 '까마귀' 암살작전에 동참할 것인가.

오디컴퍼니가 선보인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는 칠흑처럼 캄캄했던 일제 강점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과 '이수한'을 통해 식민지 청년들의 꿈과 고뇌를 다룬다.

이야기는 대학생 항일운동 모임인 '문학회'를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윤이선과 서진연, 이수한은 학생공연을 금지하는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침략에 맞서 싸우는 베네치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꿈꾸는 자들'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다.

'일 테노레' 박은태(윤이선 역)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극중 윤이선은 자신도 몰랐던 특별한 목소리를 가진 의대생이다. 형의 그림자에 가려 소심하게 자랐고, 부모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는 것밖에 몰랐지만 우연히 '오페라'를 만나 조선 최초의 테너를 꿈꾼다.

박은태가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을 연기, 점차 성장하는 캐릭터를 섬세한 연기로 표현한다. 소심한 의대생의 모습에서 성악가로 성장하는 모습, 노인이 됐을 때의 모습까지 다채로운 모습으로 분해 전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가창력을 뽐낸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오페라를 공부하는 식민지 청년들을 가로막는 요소들은 너무도 많다. 오페라를 하겠다는 아들의 꿈에 반대하는 아버지, 점점 심해져가는 조선총독부의 검열, 난방장치도 없는 연습실, 구두굽이 끼는 얇은 무대바닥….

온갖 고난을 헤쳐내고 오페라 공연을 코 앞에 둔 문학회에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해 '까마귀'로 불리는 조선총독부 간부가 극장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수한과 서진연은 공연 중 무대가 암전된 틈을 타 까마귀를 암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윤이선은 공연 직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일 테노레' 단 한 번의 기회. 전재홍(이수한 역) 외(사진=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진연으로 분한 박지연은 강단 있는 연출가이자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 윤이선에 대한 사랑을 연기한다. 단단함이 느껴지는 강인한 카리스마와 폭발적 가창력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전재홍은 독립운동에 진심인 건축학도이자 오페라 공연의 무대 디자인을 맡은 이수한으로 완벽 변신했다. 매끄러운 연기와 중저음이 돋보이는 발성이 압권이다.

1930년대 경성의 분위기를 물씬 담은 무대와 의상도 관객을 극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제작진은 스토리의 큰 줄기인 '독립 운동'과 '오페라 무대' 모두 앞이 아닌 뒤에서 단 한순간을 위해 준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 무대를 제작했다. 어둡고 좁은 빈틈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활용해 독립운동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무대 중앙부와 양옆에 자리한 3개의 턴테이블이 회전하며 마지막 꿈의 무대인 부민관 무대로 변화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교복은 사실적 재현을 위해 대학 마크부터 교복 단추까지 디테일을 살렸다. 이화여전 교복 역시 사실에 기반해 틀을 유지하되 짙은 푸른색 치마로 세상을 향한 꿈을 표현했다.

'일 테노레' 1막2장_박지연(서진연 역)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박천휴와 윌 애런슨이 만들어낸 '일 테노레'의 넘버들이 작품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18인조 중 12인조가 현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배경으로 '꿈의 무게', '그리해, 사랑이여' 등이 관객을 극에 빠져들게 한다. 골드레코드 사장이자 '최철'역을 맡은 최호중은 재즈풍의 넘버를 능숙한 재스쳐와 무대 매너로 소화하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넘버는 '꿈의 무게'다. 무대 뒤편이 열리고 늙은 이선이 노래하며 떠나는 장면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나의 오 나의 찬란하던 꿈이여. 내겐 전부였네. 무겁게 짓누른대도 홀로 기꺼이 온전히 짊어졌던 꿈의 무게.…(중략)…이젠 나의 지친 꿈을 쉬게 해주오. 허락해주오. 허락해 주오. 내 마지막 이 노래." 2월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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