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신설 우주항공청, 기술 융합의 산실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서 비스듬히 북쪽으로 뻗어 있는 2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동쪽으로 향하는 210번 프리웨이를 거쳐 로컬 도로로 진입하면 곧 NASA 산하의 제트추진연구소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삼엄한 경비는 이곳이 국가 핵심 기술을 다루는 연구소임을 직감케 한다.
넓은 연구소 경내는 여러 내부 도로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이 돼 있는데 그 도로 이름들이 어쩐지 귀에 익다. 익스플로러, 매리너, 서베이어, 파이오니어. 바로 이 곳에서 개발했던 인공위성, 달 탐사선, 행성 탐사선들의 이름이다. 이 임무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오밀조밀 들어선 수십 동의 건물 중 비교적 입구에서 가깝게 위치한 아담한 건물에 SWAT이라 불리는 연구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팀은 서브밀리미터파(300GHz 이상 대역 전자파)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는 그룹으로 테라헤르츠 대역 관측을 위해 발사됐던 허셜 우주 망원경의 핵심 부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바 있다. 명성에 걸맞게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연구 시설 및 연구원을 갖추고 있으며, 이에 유럽 우주국(ESA) 및 세계 여러 대학의 초고주파 연구자들이 수시로 방문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허브로 발전했다.
다소 의아스럽다. 제트추진연구소는 그 이름이 뜻하는 바 우주 발사체와 비행체를 개발하는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세계 최고의 초고주파 연구팀을 품고 있다니. 결론부터 말하면 NASA 산하의 제트추진연구소는 우주 탐사와 관련된 모든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인공위성, 행성 탐사선 뿐 아니라 허블 망원경과 제임스 웹 망원경의 핵심 부품, 그리고 원거리 우주 통신을 위한 특수 안테나 등이 이 곳에서 개발됐고 또 개발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고 교류한다. 우주 탐사란 본래 여러 기술 분야가 복합적으로 어울려 발전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너지가 발생하고, 이에 힘입어 함께 발전하고 함께 세계 최고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우주 탐사를 통합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우주항공청이 들어선다. 설립을 위한 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5월 출범을 앞두고 속도를 내게 됐다. 진통도 있었다. 정부 조직 내 위상, 기존 관련 연구소들과의 연계 방안, 청의 입지 등에서 여러가지 의견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불구하고 국익차원에서 대승적 합의를 이끌어낸 모든 관계자들께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나로호와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 등 우주 개발에 있어 여러 중요한 진척을 이룬 바 있다. 그러나 역내 주요 주변국들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중국은 지난해에만 60기 넘는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다누리의 성공적 달 궤도 진입에 갈채를 보냈지만 중국은 2013년 이후 세차례 착륙선을 달 표면에 안착시켰고, 인도의 착륙선도 작년 달의 남극에 성공적으로 착지하였다. 지난 주말 일본의 달 착륙 소식도 전해졌다.
더 멀리 화성의 경우 인도와 아랍에미레이트의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바 있다. 북한이 자체 발사한 정찰위성에 비해 해상도가 뛰어난 정찰위성을 우리도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리고 안도했지만 이웃 일본은 2003년 이후 15기가 넘는 정찰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우주항공청의 설립은 이러한 주변국과의 격차를 해소하는 좋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한 지붕아래 통합된 개발 추진은 우주 탐사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의 융합과 함께 이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통합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한 가지 우려가 있다. 이번 겨울,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우울하다. 대규모로 감축된 올해 연구 예산 때문이다. 계획된 연구가 무산되고 사기가 꺾였다. 연구개발자를 국가최고지도자가 등에 업고 격려하는 북한의 희화적 모습에 일말 부러움이 느껴진다면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는 5월까지는 연구자들의 사기가 반등할 계기가 있길 기대해 본다.
이재성 한국전자파학회 수석부회장·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jsrih@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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