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12〉남극에 첫 조사단 파견
과학기술처는 1987년 들어 남극과학기지 건설에 속도를 냈다.
그해 2월 12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경기 과천 정부제2청사 과학기술처 상황실에서 새해 과학기술처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래 자원보고인 남극개발 기반을 구축하고 기상·해상·생물·자원 등 분야에서 선진국과 공동연구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올해부터 남극과학기지 건설을 조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이태섭 장관은 “남극과학기지 건설을 위해 예산을 투입, 기지를 건설해서 남극탐사를 본격화하겠다”면서 “해양개발을 위해 남해안에 대규모 해양연구단지를 조성하고 해양개발기본법을 연내 제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북한보다 앞서서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남극과학기지를 건설하라”면서 “정부는 앞으로 어떤 분야보다 과학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민간기업도 과학기술 투자를 대폭 늘리도록 적극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과학기술처는 남극기지 건설사업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해양연구소가 주관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어 3월 1일 해양연구소에 극지연구실을 신설했다. 초대 실장직은 박병권 박사가 맡았다. 박 실장은 육사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질학과를 거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소장과 공공기술연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극지연구실은 이후 1990년 7월 1일 극지연구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이어 2004년 4월 16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로 출범했다. 현재 소장은 신형철 박사다. 신 소장은 극지연구소에서 부장과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과학기술처는 그해 3월 25일 남극과학기지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외무부, 국방부, 문교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쳤다.
과학기술처는 4월 3일 과학기지건설을 위한 조사단을 남극 킹조지섬으로 급파했다.
조사단은 8명이었다. 송원오 당시 해양연구소 제1연구부장을 단장으로 남극극지탐험대로 활동한 해양연구소 장순근 박사와 최효 박사, 주진엽 주칠레 한국대사관 참사관, 현대엔지니어링 윤은영 이사와 정영변·양철준·임영 씨 등으로 구성했다.
박승덕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당시 과학기술처 연구개발조정실장)의 말. “과학기술처는 남극과학기지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해서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이어 4월 초 과학자와 외교관, 기술자 등으로 구성한 현지조사단을 남극에 파견했다. 현지조사단은 약 1개월간 현장답사를 통해 기지 후보지를 조사하고 건설자료를 입수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중국·칠레·우루과이 기지 인근에 있는 킹조지섬에서 기지 후보지를 선정했다.”(살며 생각하며)
이들은 3일 김포공항을 출발해서 4월 18일 현지에 도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상 악화와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애초 예정일보다 늦은 4월 24일 오전 2시(현지시간) 킹조지섬에 도착했다. 킹조지섬은 남극대륙의 관문으로 통했다.
송원오 당시 조사단장의 회고. “조사단은 후보지 확인, 새로운 후보지 발굴, 설계자료 수집, 기지 운영 등 임무를 띠고 킹조지섬으로 급히 떠났다. 떠날 때는 주칠레 한국대사관에서 주선한 칠레 공군 전세기편을 이용해 곧장 킹조지섬으로 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뉴욕을 거처 막상 산티아고에 도착해 보니 부활절 휴가인 데다 기상악화로 처음부터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 뒤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킹조지섬에 도착했다. 비행기 활주로는 이미 빙판으로 변했고, 남극기지들은 월동 중이었다.”(남극에 서다)
현지에 도착한 조사단은 칠레 기지에 임시 숙소를 마련했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가까운 곳은 걸어다녔다. 먼 곳은 헬리콥터로 항공 정찰을 하려 했지만 기상이 나빠 어려움이 많았다.
조사단은 5월 7일까지 기지 후보지 10곳을 조사하고 기지건설을 위한 정밀답사를 했다. 또 인근 외국 과학기기를 방문해서 기지 통신과 발전설비 등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조사단은 조사 결과 4곳을 기지 후보지로 선정했다. 조사단은 당시 외교관계가 없던 중국과 소련 기지까지 찾아다니면서 기지건설 자료를 수집했다. 기지 후보 입지 조건은 가용부지 면적, 해상 접근성, 항공 교통편, 용수원, 인근 기지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지점별로 기지건설과 운영에 따른 문제점을 비교 검토했다. 마음에 드는 곳은 이미 선발국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사단은 5월 13일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조사단이 현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후보지로 결정한 곳은 바턴반도 일대였다. 중국·소련·아르헨티나·우루과이 과학기지 인근이었다.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조사단이 귀국하자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남극과학기지 건설 전반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이 장관은 “내년(1988년) 2월까지 남극대륙 킹조지섬에 남극과학기지 건설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귀국한 남극현지조사단의 보고를 받고 이달 안에 최적 과학기기 건설 지역을 선정하고 60억원 예산을 확보, 내년 2월까지 기지건설을 완공하겠다”면서 “9월 중순까지 1만톤급 선박에 건설기자재를 싣고 한국을 출발, 11월 초순 킹조지섬에 도착하는 대로 즉시 건설에 착수한다”고 부언했다.
이 장관은 “남극과학기지에는 본관, 연구동, 발전실, 식품저장 등 연구소와 거주시설을 짓는다”면서 “기지에는 연구원과 운영요원이 상주하며, 해양학·생물학·지질학·기상학 등과 극지공학·극지인체학·생리학·극지에너지변환 연구 등 첨단 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6월 23일 남극과학기지 건설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해양연구소는 7월 27일 소장 직속으로 남극기지건설사업단을 발족했다. 남극기지 건설과 운영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발족한 사업단은 극지연구와 남극기지를 관장하는 극지연구실, 기지건설을 지원하는 행정실로 구성했다.
8월 28일. KAIST는 한국남극과학연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위원회는 국제학술연합회 산하기관인 남극과학연구위원회 가입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극과학기지건설, 연구계획 수립 등을 조언하기 위해 설립됐다.
한국남극과학연구위원회 위원은 과학기술처, 외무부, 국방부 등 관계부처 국장급 인사와 과학자 등 17명으로 구성했다. 한국은 그해 12월 남극과학연구위원회에 준회원으로 가입했다. 이어 1990년 7월 세계 22번째 정회원으로 승격했다.
해양연구소는 남극기지건설 도면 작업부터 건설공사 계약 등 모든 업무를 담당했다. 기지건설은 현대건설이 맡기로 했다. 계약 주관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답사 자료를 바탕으로 기지설계에 착수했다.
허형택 당시 해양연구소장의 말. “현지 조사결과를 토대로 기지 설계도를 완성하고 곧바로 기지 건물 제작에 착수했다. 당시 남극기지 건물들은 남극이라는 특수환경과 공사 기간 단축 등을 고려, 국내에서 조립식으로 제작해 현지에서 조립하도록 했다. 모든 공정은 차질없이 진행했다. 드디어 1987년 8월 말 건설단이 현지를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기지건설 확정과 현지조사단, 설계, 건물 제작 완료 등이 불과 6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됐다.”(남극에 서다)
그런데 출발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건설을 담당한 현대건설이 건설비 55억원으로는 도저히 공사를 할 수 없다며 출발을 거부한 것이다. 출발이 늦어지면 남극에서 공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정부에 추가예산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해양연구소는 묘책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허형택 당시 소장의 증언. “선박 출항을 더 이상 지연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처하자 실무자들이 막후교섭을 통해 기지건설 기자재를 실은 배를 10월 초에 출항하기로 합의했다. 단 공사 후 설계변경을 통해 추가예산을 배정받아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전제로 '설계변경 사유가 발생할 시 계약금액의 20% 범위 한도로 계약액을 증액한다'는 양해각서를 현대엔지니어링 사장과 해양연구소장이 교환한 후 배를 출항할 수 있었다.”
그해 9월 11일 양측은 최종 계악서에 서명했다. 길고 힘든 하루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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