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와주라?…파렴치한 ‘건축왕’, 정말 은닉재산 없나[공성윤의 경공술]

공성윤 기자 2024. 1. 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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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억원 전세사기로 구속돼 15년형 구형된 남헌기
은닉재산 추적 과정서 인테리어∙주유소∙카페 등 여러 업체 운영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인천에서 453억원 상당의 전세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축왕' 남헌기씨(63)가 피해 구제 책임을 공공에 떠넘기는 듯한 발언으로 공분을 일으켰다. 남씨 측은 이전에도 피해자들에게 '인천시와 LH가 도와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끝내 자발적 피해회복 대책을 언급하지 않는 남씨를 두고 은닉재산 추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은 1월17일 인천지방법원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남씨에게 징역 15년과 함께 범죄수익 115억여원을 추징해달라고 요청했다. 징역 15년은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이다. 검찰은 "남씨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사업이 어려워졌을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하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또 검찰은 남씨와 함께 기소된 공인중개사, 명의수탁자 등 공범 9명에게는 각각 징역 7~10년을 구형했다.

2023년 10월4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회원들이 '건축왕' 남헌기 일당의 범죄수익 몰수를 촉구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작년에도 "공공의 임대지원이 근본 해결방안" 주장

남씨 측은 줄곧 무죄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남씨 측 변호인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낙인 찍혔다"고 호소했다. 앞서 재판 과정에서는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최후진술에 나선 남씨는 "사랑하는 임차인들과 임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면서 "아침저녁으로 피해 복구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1년여 간 감옥에서 설거지도 하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정부에서 특별법 (제정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감정가 매수를 진행한다고 하니 임차인 여러분도 희망을 잃지 마시고 피해가 복구되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정부와 LH가 도와줄 테니 기다려보라는 취지다.

남씨의 피해자이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상미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본인이 사기를 저질러 놓고 정부와 LH더러 수습하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검찰도 구형 이유를 설명하며 "피고인들은 마치 저렴한 전세보증금을 받으며 자선사업을 했던 것처럼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하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남씨의 태도는 이번에 처음 드러난 게 아니다. 남씨가 소유한 회사 중 한 곳인 '행복공간을 만드는 사람들(행만사)'은 지난해 4월20일 피해자들에게 회복 방안이 담긴 문건을 배포한 적이 있다. '전세사고 임차인에 대한 인천시 지원 방안'이란 제목의 해당 문건에는 "전세금 미반환 경매물건을 공공(시 또는 LH)이 직접 매입 후 현 거주 임차인에 임대지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즉 피해자로부터 보증금을 착취하는 데 악용한 주택을 공공이 떠안으라는 것이다. 행만사는 이에 대해 "근본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453억원 상당의 전세보증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축왕' 남헌기씨(63) ⓒ 연합뉴스TV 캡처

당당한 건축왕…"숨겨진 재산 찾으면 전액 주겠다"

피해자들은 남씨의 재산을 몰수해 피해 보전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도 피해재산 환수를 위해 남씨 일당에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다만 안상미 위원장은 "은닉재산에 대해 계속 수사요청을 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했다. 남씨 측은 은닉재산은 일절 없다고 강조했다. 행만사 관계자는 지난해 4월 피해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인터넷 카페에서 "남씨의 숨겨진 재산을 찾으면 찾은 분에게 전액 드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일단 지난해 5월 남씨 일당에 대해 92억원을 추징보전 청구했다. 추징보전은 검찰이 불법 수익을 미리 처분하지 못하도록 재산을 묶어 두는 절차다. 추후 재산이 경매나 공매를 통해 매각되면 매각대금 중 추징보전한 금액만큼 국고에 귀속된다. 시사저널 확인 결과, 법원이 추징보전을 인용하면서 2개월 뒤인 지난해 7월 남씨가 소유했던 강원 동해시 괴란동의 184만여㎡ 토지에 60억원의 가압류가 설정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은 60억원을 실제 환수할 수 없게 됐다. 해당 동해시 토지는 검찰이 가압류를 걸기 이전부터 수차례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남씨는 2018년 1월 이 땅을 대출 없이 143억원에 취득했다. 이후 사업자금 마련과 보증금 반환 등을 위해 땅을 담보로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그 채권 총액은 검찰의 가압류분인 60억을 빼고도 409억원이다.

2023년 4월27일 강원도 동해시 심곡동 419-1 일대 남헌기가 소유한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망상지구 내 토지. ⓒ 시사저널 최준필

'대어급' 남씨 재산인 동해 토지는 환수 실패

결국 해당 토지는 2022년 10월 경매에 나왔다. 그래도 감정가가 채권 총액을 상회하는 543억원으로 책정돼 고가 낙찰이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해당 토지는 2023년 9월 감정가의 70%인 380억원에 중흥토건이 인수했다. 그마저도 다른 입찰자가 없어 단독 낙찰됐다. 매각대금 380억원은 채권 총액(409억원)보다 적기 때문에 채권단에 배당하고 나면 검찰이 가져가는 몫은 '0'이다.

결국 남씨의 드러난 재산 중 대어급인 동해시 토지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검찰의 재산 환수 절차가 차질을 빚게 됐다. 피해자들은 남씨뿐만 아니라 그 일당과 가족의 재산도 뒤져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남씨가 차명으로 딸에게 증여를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남씨는 딸 A씨(34)의 이름을 빌려 건설사를 설립하고 시행사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직접 임대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A씨는 채무 탕감을 노리고 회생신청을 했지만 지난해 9월 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A씨의 재산을 압류할 길이 열렸다. 그 외에도 남씨 일당은 인테리어업체, 건물관리업체, 청소업체, 주유소, 카페 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시사저널 2023년 5월1일자 기사 "욕망이 부른 몰락…빚으로 쌓은 건축왕의 '모래성'" 참조) 아직 남씨의 밑천이 드러났다고 단정짓기 이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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