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이 태어난 곳은 서점이었다

한겨레21 2024. 1. 2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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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책방 기행] <프랑켄슈타인> 작가 메리 셸리는 서적상의 딸… 윌리엄 고드윈의 어린이책 전문서점
윌리엄 골드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교류했던 일라이자 펜윅의 <소년도서관 방문>(1805) 속 삽화. ⓒ뉴욕공공도서관

메리 셸리(1797~1851)는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세계 최초의 에스에프(SF)로 평가받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작가다. <프랑켄슈타인> 발표 200주년을 기념해 2017년 개봉한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작가 메리 셸리의 탄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오프닝의 두 시퀀스는 셸리의 근간을 솜씨 좋게 표현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메리 셸리 역을 맡은 엘 패닝이 묘지에서 책을 낭독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이동하며 누구의 묘지인지가 드러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셸리의 어머니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는 1792년 불과 서른세 살의 나이로 <여성의 권리 옹호>(책세상 펴냄)를 썼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이성적 존재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이다. 그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것은 남성의 권리만을 외친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에 대한 도전이었지만 실은 생계 수단이기도 했다. 1791년 9월 집필을 시작해서 1792년 충분한 퇴고 없이 서둘러 출간됐다. 문법적 오류가 많고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런 지적에 울스턴크래프트는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었겠지만 상업적인 용도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급진적 사상을 지닌 여성이자 다른 한편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만 했던 전업작가로서 울스턴크래프트의 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혁명 와중의 파리에서 길버트 임레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실연당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영국으로 돌아와 1797년 윌리엄 고드윈(1756~1836)을 만나 딸을 낳지만, 출산 뒤 열흘 동안 산욕열에 시달리다 사망한다. 메리 셸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감은 상당했다. 글을 깨치고 처음 읽은 문구가 어머니 묘비에 쓰인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고 할 정도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할까. 메리 셸리 역시 당대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았다.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아버지와 의절하고 유부남 퍼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를 선택한다. 영화가 울스톤크래프트의 묘지에서 시작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메리 셸리를 만든 정신의 한 축을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아나키스트 아버지의 서점에서 살다

영화가 다음으로 보여주는 것은 메리 셸리의 집이다. 카메라는 런던의 지저분한 뒷골목과 아이들을 보여주다 셸리가 들어간 상점의 간판을 훑는다. ‘고드윈, 서점과 제본’(W. Godwin, Book seller & Binder)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셸리의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이 운영하던 가게다. <정치적 정의에 대한 질문>을 쓴 고드윈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시초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와 아나키스트 아버지의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셸리라니!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고드윈은 울스턴크래프트가 죽은 뒤 두 번째 부인과 살며 1805년 서점이자 출판사 ‘소년도서관’을 시작한다. 셸리는 당시 정규교육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여성이었지만 아버지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아버지에게 교육받았을 뿐 아니라 서점에서 책을 읽고 당대의 지식인을 만날 수 있었다. 고드윈의 서점 위층에는 거실이 있어서 고드윈의 친구와 작가지망생, 망명자 등 많은 사람이 오갔다. 메리가 사랑에 빠진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도 고드윈의 서점에 드나들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1818년 1월 익명으로 출판된 <프랑켄슈타인>은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에게 헌정됐다.

한데 아나키스트 고드윈은 어쩌다 어린이책 서점을 시작한 걸까. 장자크 루소의 영향을 받은 그는 “어린이가 스스로 판단한 권리가 있는 이상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의 진보적 교육 사상은 <질문하는 법>(유유 펴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에 대한 글을 썼던 고드윈은 인생 후반부에 ‘어린이를 위한 책’을 직접 출판하고 판매했던 것. 마침 영국에서 ‘어린이’의 존재를 재발견하며, 19세기 중산층이 자녀를 위한 어린이책을 열정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영국 런던 한웨이스트리트에 있던 소년도서관에서 발행한 윌리엄 고드윈의 <우화>. ⓒ헤리티지옥션

글쓰기로 자아를 재현한 여성작가들

고드윈의 소년도서관은 어린이책 출판과 서점을 겸했다. 그가 펴낸 어린이책 중 지금껏 독자들이 읽는 책이 있다. 뛰어난 수필가로 유명한 찰스 램이 누이 메리 램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어린이를 위해 소설로 다시 쓴 <세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다. 1807년 출간된 이 책에는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 등을 비롯해 20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고드윈도 ‘에드워드 볼드윈’이라는 가명으로 아일랜드 예술가 윌리엄 멀레디의 전기, 이솝우화를 자유주의 시각으로 해석한 <고대와 현대의 우화>를 썼다.

영화에서 퍼시는 메리를 처음 만나 이렇게 묻는다. “글을 쓰시죠?” 산업혁명과 더불어 성장한 중산계급은 딸의 교육을 장려했고, 여성의 글쓰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신문의 성장과 연재소설의 등장은 중산층 여성의 글쓰기를 한층 촉발했다. <소설의 정치사>에서 낸시 암스트롱은 “여성과 글쓰기는 대립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여성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현실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런 여성의 모습을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에게서 엿볼 수 있다.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저자

*안녕, 유럽 서점: 유럽의 서점을 돌아보며 우리 서점의 내일을 생각해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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