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요즘 학생’의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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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보고 있으면 내가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소논문을 쓴다고? 고등학생이? 나는 대학 졸업 때 논문 쓰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딸이 방에서 수시로 "으악~"거린 이유는 주장의 근거를 대기 위해 다른 논문을 찾아서 인용해야 하는데 중 2의 머리로 석학들의 논문을 읽고 있으니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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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보고 있으면 내가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요즘 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이다.
겨울방학 동안 딸은 굳이 학원 수를 늘리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는 딸 학원에서 보낸 문자를 보는데 단 3회짜리 ‘탐구보고서 특강’이라는 게 눈길을 끌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생활기록부에 기록될 탐구보고서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어떻게 작성하는 것인지 방법을 알려주는 특강이라고 했다.
딸과 합의해 특강을 받기로 했다. 탐구보고서가 뭔지 엄마는 모르는 영역이니 네가 배워와 고등학생이 되면 알아서 잘 해보라 했다. 2회까지 마친 지금, 딸은 방에서 수시로 “으악~” 소리를 지르며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탐구보고서가 뭐길래?”하고 들여다보니 소논문 형식이다. 관련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학창 시절 어떤 것에 관심이 있어서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논리적 추론 과정을 써내는 것이다.
헐. 소논문을 쓴다고? 고등학생이? 나는 대학 졸업 때 논문 쓰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딸이 방에서 수시로 “으악~”거린 이유는 주장의 근거를 대기 위해 다른 논문을 찾아서 인용해야 하는데 중 2의 머리로 석학들의 논문을 읽고 있으니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안됐지만 네 팔자다. 대한민국에서 중학생으로 살고 있는 네 팔자.
딸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교육이 얼마나 학생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교육인지 알 수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선 주요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잘하는 가운데 킬러문항을 풀 수 있을 만한 ‘더 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논술은 기본이 되어야 하며, 탐구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소논문 같은 것도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10대 후반에 불과한 고등학생이 이 모든 일을 다 해내야 한다니, 무서울 지경이다.
지난 16일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의 존치를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을 두고 여러 의견이 쏟아지는 것을 본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입시를 위한 무한 경쟁은 앞으로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 더 바짝 쪼이는 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더 완벽한 입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학생들은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무엇이든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기 마련인데 대한민국 수험생의 임계점은 우주만큼 넓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무서운 압력이 휘몰아치는 ‘수험생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인간으로서의 능력도 업그레이드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교육의 미래가 국가의 미래라고 한다. 지금 교육의 결과는 20~30년 후 사회변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인생 말년 노년층이 되어 있을 현재의 교육 정책 입안자들이 부디 과거의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있길 바란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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