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 VS 트럼프’ 양자 대결 된 뉴햄프셔…디샌티스 사퇴 두고 서로 다른 셈법
“방금 디샌티스가 사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만 남았다.”
21일(현지시간) 오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포기를 선언한 지 불과 10분이 지난 시각, 뉴햄프셔주 유세 현장에 등장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외쳤다.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대서양 연안에 접한 마을 시브룩의 해산물 식당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 참석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디샌티스의 하차가 정말 사실인가?”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이틀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디샌티스 주지사의 사퇴로 공화당 경선 구도는 ‘트럼프 대 헤일리’의 양자 대결로 재편됐다. 헤일리 전 대사는 “똑같은 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원하는가”라며 ‘바이든도 트럼프도 아닌’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그간의 주장을 이어갔다. 헤일리 지지 유세에 대부분 동행하고 있는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는 “몇 주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1대1 대결이 성사됐다. 여러분이 투표하면 불가능이 현실이 된다”며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경선 중도 하차에 반색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로체스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유세 연설 초반에 “론과 그의 아내 케이시가 훌륭한 선거운동을 한 것을 축하한다. 그는 우아하게 (사퇴)했고 나를 지지한 것에 감사한다”면서 “이제 부패한(crooked) 바이든을 저지하는 데 나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디샌티스 주지사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해온 표현인 ‘디생티모니어스(DeSanctimonious)’를 언급하며 “그의 별명은 공식 은퇴”라고도 했다. 경선 사퇴와 동시에 자신을 지지한 디샌티스 주지사를 더는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두 후보가 나란히 디샌티스 주지사의 사퇴를 환영한 데는 서로 다른 셈법이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서는 디샌티스 주지사 지지층을 흡수해 대선 후보 지명을 조기에 확정짓는 게 목표이다. 줄줄이 예정된 재판 일정과 겹치는 슈퍼 화요일(3월5일) 이전에 경선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바이든 대통령과의 본선 대결에 집중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미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 사퇴한 기업인 출신 비벡 라마스와미 후보와 팀 스콧 상원의원의 지지도 확보했다.
반면 헤일리 전 대사는 양자 대결 구도가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지지 결집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일한 당내 경쟁자 입지를 확고히 해 남은 경선 과정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헤일리 지지자들은 반트럼프 정서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무당파인 40대 부부 롭과 니콜은 “헤일리의 입장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선택지인 T(트럼프)가 싫다. 헤일리는 범죄자는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이날 뉴햄프셔 전역에서 5차례 유세를 소화하면서 지지자들과 개별적인 접촉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단 한 차례의 대규모 저녁 유세만 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행보를 보였다.
이번 경선의 관전 포인트는 중도층과 무당파가 많은 뉴햄프셔 유권자 표심의 향배다. 특히 전체 유권자의 39%에 달하는 무당파가 트럼프와 헤일리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전체 경선 결과도 움직일 수 있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위가 뚜렷하다. CNN방송과 뉴햄프셔대가 지난 16~19일 뉴햄프셔 공화당 경선 참여 의사가 있는 유권자 12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공개한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50%의 지지를 받아 헤일리 전 대사(39%)를 11%포인트 차로 앞섰다.
1월 초 헤일리 전 대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한 자릿수대로 따라잡았다는 조사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최근 둘 사이의 격차는 10%포인트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퍽대 등의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무당층의 헤일리 전 대사 지지가 53%에서 45%로 줄어든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는 32%에서 44%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이오와 코커스 압승으로 더욱 힘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세론’의 한 단면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뉴햄프셔의 트럼프 지지자들도 지난주 아이오와에서 만난 열성 트럼프 지지층 못지 않았다. 로체스터 오페라하우스 앞은 입장 시작 세 시간 전부터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접 보려는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몰렸다. 주최 측이 수용인원(약 750명)을 이유로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알린 뒤에도 지지자들은 한참 동안 일대를 떠나지 않고 “우리는 트럼프를 원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필요한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유세에 참석한 20대 커플 맨디와 제프는 “우리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트럼프 대선 구호)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가 있다. 트럼프에 대한 기소를 중단하고 2020년 조작된 대선 결과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햄프셔 현지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경제, 에너지, 이민, 외교 문제를 최대 관심사로 꼽았다. 트럼프 지지자인 댄 플린은 “바이든 집권 3년 동안 금리와 휘발유 가격 폭등으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며 “바이든이 에너지와 국경 문제에서만이라도 트럼프의 정책을 유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60대 제이 설리번은 기자에게 “북한의 핵 위협이 걱정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면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통제한 것 같기는 하지만 둘다 독재자이자 고삐 풀린 사람들”이라며 헤일리 전 대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본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오는 11월이면 만 18세가 되어 대선 본선에서 투표할 수 있는 에이든은 “바이든-트럼프 리턴매치가 될 경우 로버트 케네디에 투표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케네디도 일흔 살이지만 적어도 80대는 아니다. 어르신들을 존경하지만 80대 대통령은 미국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브룩·로체스터(뉴햄프셔)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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