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하는 북극곰의 비밀

한겨레 2024. 1. 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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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3회
북극곰이 흰고래를 보고 얼음 위에서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기후위기 논란의 현장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출동합니다. 어지러운 숫자들로 뒤덮인 복잡한 자연-사회 현상을 엉망진창 조사반이 주제별로 조사해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조사반의 활동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사실과 의견은 취재와 논문,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1회 ‘북극곰들은 왜 다이어트 중일까?’(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23410.html)

2회 ’바다가 얼지 않자 북극곰 저출생이 생겼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24462.html)에서 이어집니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비엘(BL)이라고 한 제보자는 북극곰이 매년 다이빙대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어요. 북극곰이 바다얼음 사이로 수영을 잘한다는 건 널리 알려졌지만, 다이빙이라니요? 뚱뚱한 북극곰이 다이빙하면 폼도 안 날텐데... 점수나 매길 수 있을라나요? 여하튼, 눈으로 보기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는 법이죠.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비행기를 타고 북극해 스발바르 제도로 날아갔어요. 인간의 최북단 정주지이죠. 한겨울이라 이미 꽁꽁 언 바다가 섬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다시 헬리콥터로 갈아타고 북극곰을 찾아다녔죠. 그런데 북쪽으로 한 시간쯤 날아갔을까.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얼음 한가운데 개빙구역(開氷區域)이 있었어요. 마치 작은 호수 같았어요. 거기서 낚시를 하는 사람마냥 북극곰이 조용히 앉아있지 뭐예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사냥 워크숍

“저기, 혹시 다이빙하는 북극곰 보신 적 있어요?”

“쉬잇~”

갑자기 얼음 호수에서 하얀 고래 여러 마리가 올라왔어요. ‘벨루가’라고도 불리는 흰고래였죠. 북극곰은 놓칠세라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첨벙! 벼락 같은 다이빙에 우리는 물벼락을 맞았죠.

“헐! 너희들 때문에 허탕쳤잖아!”

우리는 자초지종을 얘기했어요. 북극곰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죠.

“금방 보질 않았나? 우리 북극곰들은 원래 다이빙을 할 줄 안다오. ‘기후변화 때문에 북극곰이 먹을 게 없어서 흰고래를 먹기 시작했다’고 인간들이 떠들고 다니는 모양인데, 우리는 옛날부터 이렇게 다이빙하며 흰고래를 사냥했다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쳤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가르쳤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잠깐만요. 근데 아저씨 다이빙 실력은 형편 없던데요.”

“북극곰 교과서를 보시오. 뭐라고 나오는지.”

북극곰이 해안가에서 흰고래를 보며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다. 게이티이미지뱅크

북극곰은 일반적으로 바다얼음에서 물범을 사냥합니다. 바다얼음은 시시각각 붙었다가 떨어지며 움직이는데, 북극곰의 핵심 사냥 구역은 얼음과 바다가 만나는 곳입니다. 물범이 얼음 위로 올라가 쉬고 있을 때, 북극곰은 몰래 다가가 덮치지요.

물론 북극곰이 북극해를 돌아다니다보면, 광활한 사막처럼 바다얼음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 들어서기도 하죠. 그러다가 이렇게 호수처럼 작은 개빙구역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거기서는 흰고래를 기다립니다. 흰고래는 폐로 호흡하는 포유류여서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합니다. 그런데 얼음이 녹아 있는 곳으로 가기엔 너무 멀어서, 이런 호수에서 숨을 쉬면서 얼음의 지형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거죠.

하품을 하던 북극곰이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물론 흰고래 사냥이 우리 주업은 아니지. 사냥감이 정 없을 때나 재미로 하는 거지. 물론 캐나다에 있는 북극곰들이 새로운 다이빙 방법을 개발해 교육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북극곰 사냥 워크숍’이라던가?”

“그 워크숍이 어디서 열리는데요?”

“나야 모르지. 작년에 그린란드에서 만난 북극곰이 그러더군.”

얼음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그곳

우리는 연구소로 돌아와 문헌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생물종에 대해 처음 조사할 때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이나 해양포유류백과사전 같은 사전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북극곰은 광활한 북극해를 중심으로 흩어져 삽니다. 어미가 새끼를 기르는 2~3년을 빼고는 단독 생활을 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고독한 동물이죠. 게다가 워낙 외딴 서식지에서 낮은 밀도로 서식하기 때문에, 개체수를 추정하는 연구 같을 걸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어려워요.

그래도 현재까지 정리된 바에 따르면, 북극곰은 모두 19개 지역의 개체군으로 나뉩니다. 북극해 정중앙인 북극분지를 비롯해, 배핀만, 추크치해, 데이비스해협, 동그린란드, 랭커스터해협 개체군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집단이 사자나 길고양이처럼 자신의 영역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그 지역을 중심으로 다른 곳까지도 넓게 오간다는 거죠. 북극곰 한 마리의 서식 영역은 좁게는 2만㎢에서 넓게는 20만㎢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두 배 정도의 면적인 거예요.

2010년 노르웨이 북극권에서 린드블라드 탐험대와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대가 탄 선박이 빙해를 지나가는 동안 북극곰 한 마리가 바다에 떠 있는 얼음 위에서 앞발로 배를 짚고 선 채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북극해/AP 연합뉴스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의 바다얼음 감소는 북극곰 사냥에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북극곰은 바다얼음을 무대로 물범을 사냥하니까요.

바다얼음 감소에 따라 19개 개체군 가운데 서부허드슨만과 남부보퍼트해 개체군에서 개체수 감소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하더군요. 반면 바다얼음 감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개체수를 보이는 개체군도 있고, 자료 부족으로 판단하기 힘든 곳도 많다고 합니다. 그때 조사반원이 소리쳤습니다.

“반장님, 이 대목을 보세요. 혹시 워크숍이 열린다는 곳이 여기 아닐까요?”

그가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철 바다얼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캐나다 허드슨만과 배핀섬 남동부에서는 북극곰이 몇 달 동안 해안가에 머문다. 반면 바다얼음이 멀리 북극해 해분(arctic basin)까지 후퇴하는 추크치해, 남부 보퍼트해, 스발바르 제도에서는 북극곰이 몇 달 동안 바다얼음에서 머물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극곰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얘긴데, 바로 거기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사냥 워크숍이 열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캐나다 허드슨만이라면 저번에 ‘다이어트약 먹는 북극곰 사건’으로 조사나갔던 곳 아닌가? 일단 거기로 가봐야겠군.”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1월29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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