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웡카', 티모시 샬라메의 달콤한 매력에 빠져드는 116분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이 영화 참, 달다. 영화 '웡카'를 보고 나면 각자가 느끼는 가장 단맛이 떠오를 것이다. 초콜릿, 마시멜로, 캐러멜, 아이스크림. 달콤한 건 뭐든 상관없다. 입안을 가득 채우고 온몸을 감싸는 달큰한 기운에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매직'이 제대로 발동해 현실의 시름을 잊게 만든다. 웰메이드에 속하는 프리퀄 영화이자 가족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다. '웡카'를 새로운 클래식 영화로 만든 두 주인공은 폴 킹 감독과 주연배우 티모시 샬라메다. 영화 마술사들이 부리는 마법에 이끌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웡카'는 로알드 달의 아동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1964)을 원작으로 한 프리퀄 작품이다. 멜 스튜어트 감독 연출, 진 와일드 주연의 '초콜릿 천국'(1971)과 팀 버튼 감독, 조니 뎁 주연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에 이어 세 번째 영화화다. 원작 소설에 영감을 받은 폴 킹 감독이 주인공 윌리 웡카가 초콜릿 공장의 주인이 되기 전,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개봉 시기에 맞춰 국내 출간된 '웡카'는 폴 킹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동화 작가 시빌 파운더가 완성한 아동 소설이다. 영화와 소설은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의 전개가 달라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폴 킹 감독이 연출한 '웡카'는 원작 소설과 앞의 두 영화의 특장점을 살려 프리퀄 영화의 소임을 다한다. 원작에서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견학한 끝에 후계자가 되는 소년 찰리가 있다면, '웡카'에선 소녀 누들(칼라 레인)이 웡카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적극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원작에서 웡카의 '영업 비밀'을 훔쳐 공장 문을 닫게 만든 스파이들이라고 언급된 '초콜릿 연합' 3인방 슬러그워스, 피켈그루버, 프로드노즈를 영화의 메인 악당으로 되살린 점도 재치 넘친다.
전작들의 뮤지컬 형식을 이은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초콜릿 천국'에서 진 와일더가 부른 유명 주제곡 'Pure Imagination'을 티모시 샬라메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일명 '움파룸파 송'인 'Oompa Loompa'는 움파룸파를 연기한 휴 그랜트가 앙증맞은 율동과 함께 선보여 웃음을 안긴다. 팀 버튼의 단짝 대니 엘프먼이 음악을 맡은 2005년 작이 뮤지컬 부분을 움파룸파에게 집중했다면, '웡카' OST는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스코어를 고루 안배해 뮤지컬 영화의 특징을 강화했다. 애니메이션 '씽' 시리즈의 조비 탤봇 음악감독이 스코어를, 닐 해넌(코미디 디바인)이 노래 파트를 맡아 '웡카' 만의 주옥같은 뮤지컬 스코어를 들려준다. 티모시 샬라메와 칼라 레인이 'For a Moment'를 부르는 뮤지컬 시퀀스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판타지를 선사한다. '웡카'의 명장면 중 하나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하면 1971년 작보다 팀 버튼의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이 더 많을 것이다. 팀 버튼 감독은 웡카의 이미지와 나쁜 행동을 한 아이들은 벌을 받는다는 원작의 설정에 특유의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웡카를 연기한 팀 버튼의 페르소나 조니 뎁의 이상야릇한 연기, 똑같은 외모에 독특한 춤과 노래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움파룸파 캐릭터는 팀 버튼다운 판타지를 유감없이 구현했다. 여기에 원작엔 없는 웡카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관계를 새롭게 넣어 웡카를 괴팍하면서도 정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기발한 이야기꾼 로알드 달의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폴 킹 감독의 '웡카'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와 온도 차가 극명하다. '웡카'에선 웡카와 어머니의 애틋한 관계가 그려진다. 팀 버튼의 영화가 냉소가 살짝 감도는 아이스 초코라면, 폴 킹의 '웡카'는 마음을 녹이는 핫초코라고 할까. 두 작품 모두 감독의 색채가 두드러지는 장점을 지녔다. 로알드 달과 함께 영국 아동 문학을 대표하는 마이클 본드의 '패딩턴 베어'를 성공적인 실사 영화 시리즈로 만든 폴 킹 감독은 '웡카'에서도 장기를 발휘한다. 지극히 고전적인 연출 방식으로 재미와 감동, 볼거리를 살뜰하게 챙기면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익숙한 맛이어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깊이와 풍미가 다르다는 걸 폴 킹 감독이 보여 준다.
드디어 아껴두었던 티모시 살라메에 대한 상찬을 쏟아낼 차례다. 그가 첫 장면에 모습을 드러낼 때,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할리우드 스타 티모시 샬라메의 이름은 머릿속에서 단박에 지워진다. 젊은 웡카가 우뚝 서 있을 따름이다. 그가 첫 곡 'A Hatful of Dreams'를 부르며 도시에 입성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티모시 샬라메의 진가가 전부 드러난다. 주연배우의 존재감, 노래와 춤, 정극과 코미디를 넘나드는 연기, 눈을 뗄 수 없는 매력까지 그가 얼마나 걸출한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배우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덕분에 관객은 안심하고 웡카의 초콜릿 마법 세계에 빠져든다.
티모시 샬라메는 진 와일더의 부드러운 웡카와 조니 뎁의 엉뚱한 웡카 이미지를 녹여 웡카의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티모시 샬라메의 캐릭터 해석력과 화면 장악력도 자연스럽고 상대 배우들과 만들어내는 연기 앙상블도 뛰어나다. 듀엣곡과 합창곡을 포함해 7곡을 직접 불러 차기작인 밥 딜런의 전기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드높인다. 2월에는 '듄: 파트 2' 개봉을 앞두고 있어 티모시 샬라메의 인기는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웡카'와 관련해 궁금증을 느낄 두 인물을 더 언급하자면 배우 휴 그랜트와 정정훈 촬영감독이다. '노팅힐'(1999), '러브 액츄얼리'(2003) 등 로맨틱 코미디의 주연배우 휴 그랜트는 1971년 작의 움파룸파와 닮은 '녹색 머리의 주황색 소인' 분장을 하고 나온다. 엄청난 이미지 변신이다. 특유의 영국식 발음과 억양으로 움파룸파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하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기상천외한 활약을 펼친다. 한국 영화 '올드보이'(2003), '아가씨'(2016), '그것'(2017) 등 다수의 할리우드 작품에 참여한 정정훈 촬영감독은 각 장르에 맞는 디테일한 촬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웡카'에서는 뮤지컬 장르와 동화적 분위기를 살려 유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개성이 넘치는 영상미를 구현했다.
'웡카'는 북미에서 지난달 15일 개봉해 지난주까지 전 세계 누적 수익 5억 3천만 달러(약 7,072억 원)를 기록하며 흥행 마법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찰리와 초콜릿 공장' 출간 60주년을 맞는 올해 개봉해 '기념작' 의미가 더해졌다. 작가 로알드 달이 살아 있었다면 웡카의 과거를 그린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다. 자기 작품처럼 뻔뻔한 맛은 좀 부족하다고 할지 몰라도 권선징악이 확실하고 유쾌, 통쾌한 작품이라고 칭찬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권선징악, 해피엔딩이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웡카'의 참맛을 음미하고 신나게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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