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깎아주기-퍼주기, 全보다 못하다[이철호의 시론]
1일 1선심 여야 포퓰리즘 경쟁
도 넘는 총선용 감세·현금 살포
‘서울의 봄’으로 전두환 악마화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는 결기
인기 없는 긴축 정책 고수한 全
7년 만에 후진국 → 중진국 배경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4월 총선에 나가는 대통령실 참모들과 비공개 작별 오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패배해도 당협위원장이나 공기업 등 제2 인생이 남아 있지만 나는 총선에서 지면 끝이다.” 그런 절박감 때문인지 대통령은 연초부터 용인·고양·수원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다. 수도권 총선 격전지마다 큼지막한 보따리를 아낌없이 푼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완화, 반도체 클러스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한마디로 종합선물세트다. 당정 회의도 20여 건의 감세와 이자 감면 등 사흘에 한 번꼴로 지원 사격 중이다. 벌써 연간 줄어드는 세금만 3조7000억 원이고, 건강보험료 감면과 시설투자 세액공제까지 합치면 줄잡아 10조 원에 이른다. ‘건전 재정’ 약속은 총선 앞에서 증발해 버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사생결단식 총선을 예고했다. ‘경로당 주 5일 점심 제공’을 시작으로 흉기 피습 이후 당무에 복귀하자마자 연 1조 원 규모의 양곡관리법 개정안부터 단독 의결했다. 2자녀 출산 시 24평형, 3자녀 출산하면 33평형 아파트(분양전환 임대주택)를 주기로 했다. 뭉칫돈은 덤이다. 신혼부부에게 1억 원을 빌려준 뒤, 둘째를 낳으면 5000만 원 깎아주고, 셋째 낳으면 1억 원 전액을 탕감해 준다. 여야의 불꽃 튀기는 ‘1일 1선심’ 전쟁이다.
영화 ‘서울의 봄’ 누적 관객 수가 1291만 명으로 역대 흥행 7위로 올라섰다. 재관람률 10.4%에다 2030세대 지지 덕분에 이대로 설 연휴까지 가면 5위 ‘베테랑’(1341만 명)까지 넘어설 기세다. 영화가 흥행할수록 전두환 전 대통령은 더 ‘죽일 놈’이 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사단=검찰 하나회”라는 낙인찍기에 바쁘고, 국민의힘도 “하나회를 척결한 것은 우리”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2년 전과는 딴판이다. 윤 대통령은 2021년 10월 19일 “전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많다. 호남 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이 꽤 있다”고 말했다. “저도 전 대통령처럼 지역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전문가들을 뽑아서 적재적소에 두겠다”고도 했다. 민주당이 “학살자 옹호이자 호남 능멸”이라 덤벼들었으나 “전 대통령이 다 잘못한 게 아니지 않으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대표다. 2021년 12월 11일 “전체적으로 보면 전두환이 3저 호황(저금리·저유가·저달러)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가 맞다”고 말했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나갔던 것과 대비된다. 좌파 진영이 곧바로 “전두환 경제가 성과라면 이재명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며 집단 린치를 가했다. 지지층이 흔들리는데도 이 대표는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거기다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가 성장한 것도 사실”이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 발 더 나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가 흑백논리·진영논리”라 받아쳤다.
전 전 대통령이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믿고 맡긴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뚜렷한 경제철학을 구축했고 ‘경제 안정’에는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본인이 무식해서 김 수석에게 전권을 줘 경제가 잘됐다는 것은 지나친 폄훼다. 이장규의 책 ‘전두환의 공(功)을 논함’에 따르면 1983년 7월 27일 “내년 세출 예산을 동결하라”는 폭탄선언이 나왔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이듬해 총선을 앞둔 판에 “정치적 자살 행위”라며 들고일어났다.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몰려온 민정당 간부들에게 오히려 호통을 쳤다.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데 여당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걸로도 못 미더웠던지 대못까지 박았다. “예산 동결 때문에 선거에 진다면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그렇게 ‘서울의 봄’ 이후 7년 동안 가장 인기 없는 정권이 가장 인기 없는 긴축 정책을 편 끝에 한국 경제가 살아났다. 1인당 소득 1686달러였던 후진국이 1987년 세계 평균을 뛰어넘는 3321달러의 중진국으로 올라섰다. 총선을 의식해 윤 대통령은 세금을 깎아주고, 이 대표는 재정을 퍼주는 데 골몰한다. 경제를 대하는 태도만은 전 전 대통령에게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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