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후 극단적 선택, 생존자와 '이것' 달랐다…"예방 전략 구축해야"

자해 후 생존자와 자살 사망자의 위험 요인이 각각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해 이후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이들은 생존자와 비교해 경증 장애 등 신체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살 고위험군인 자해 환자를 대상으로 차별화된 예방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박유랑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와 김혜현 박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송인한 교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이진혁 박사 연구팀은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자해 환자의 특성을 확인하고, 자해 이후 생존한 환자와 자살로 사망한 환자에서 각기 다른 위험 요인을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2002~2020년 자해(국제질병 분류 코드 X60-X84)로 병원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6332명을 대상으로 일반인구와 달리 자해 환자군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확인했다. 이어 자해 환자군에서 자해 후 자살로 인해 사망한 환자들의 사망 위험 요인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 인구와 자해 환자군은 사회경제적 요인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해 환자군은 흡연자, 의료급여 수급자, 정신과 진단 병력이 있는 경우 등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자해 이후 사망으로 이어진 환자군은 생존군과 비교해 임상적 요인에서 차이를 보였다. 경증 장애인인 경우, 높은 CCI (Charlson Comorbidity Index) 점수를 가진 경우, 장애 보유처럼 임상적 요인이 사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CCI 점수는 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기저질환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CCI가 높을수록 환자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밖에도 정신과 진단 병력이 있는 경우, 치명적인 자살 도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경우에도 사망 위험이 높았다.

자해 환자는 일반 인구보다 자살 위험이 30배 이상 높은 '고위험군'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4.6명으로 OECD 평균의 2배 이상 높다. 20년 동안 다른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은 줄어들었으나, 한국의 자살률은 오히려 46% 상승했다. 자해 환자를 포함해 고위험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지만 관련 데이터에 접근하기 어려워 위험 요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박유랑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자해 이후 생존한 환자와 달리 자살로 사망한 환자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위험요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향후 자해 환자를 대상으로 차별화된 자살 예방전략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획평가원 과제와 대한의료정보학회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수행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정신의학 연구'(Psychiatry Research) 최신 호에 게재됐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