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현종 좌충우돌에 “금쪽이” 불만…실제 역사 평가는?

이승준 기자 2024. 1. 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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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32부작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22일 20회를 방영하며 극 후반부를 향해 출발했다.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인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을 쓴 길승수 작가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16회 이후 극 전개와 현종에 대한 묘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당대·후대 평가를 종합하면 현종은 거란의 침략 등 국난을 극복하고 왕조의 틀을 굳게 다져놓아 이후 고려가 전성기를 맞는데 디딤돌을 놓은 '고려판 세종대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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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배우 김동준).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금쪽이 현종’

한국방송(KBS) 32부작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22일 20회를 방영하며 극 후반부를 향해 출발했다. 10%대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던 고려거란전쟁에 최근 시청자들의 불만이 흘러나온다. 16회에서 거란과 맞서 싸운 양규가 전사한 이후 전개가 실제 역사와 다르고, 성군으로 기록된 현종(배우 김동준)이 허술한 정치력으로 어설프고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다. 18회에서 현종이 분노에 휩싸여 말을 타고 개경을 질주하다 낙마하고 피투성이가 되자 급기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시청자들은 현종에게 ‘금쪽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고려거란전쟁의 원작인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을 쓴 길승수 작가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16회 이후 극 전개와 현종에 대한 묘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실제 역사나 원작과 같은 필요는 없다. 또 당시 기록이 많이 없다 보니 드라마에 상상력을 가미할 수밖에 없다. 후반부 하이라이트인 3차 고려거란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드라마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와 별개로 실제 역사에서 현종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당대·후대 평가를 종합하면 현종은 거란의 침략 등 국난을 극복하고 왕조의 틀을 굳게 다져놓아 이후 고려가 전성기를 맞는데 디딤돌을 놓은 ‘고려판 세종대왕’이었다. 현종에 대한 역사 속 평가를 살펴봤다.

한국방송(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중 거란과 싸우다 전사한 양규(배우 지승현).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고려 시대 평가: “비판할 거리가 없다”

“오랑캐와 화친하여 우호를 맺음으로써 전쟁을 멈추고 문(文)을 닦았으며, 부세를 감면하고 요역을 가볍게 하였고, 뛰어나면서 어진 자들을 등용하고 숭상하여 정사를 닦음에 있어 공평하였다. 안팎이 이에 평안하였고 농상(農桑)이 언제나 풍요로웠으니, 가히 중흥을 이룬 군주라고 할 만하다.”(고려사절요)

고려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해동공자’ 최충의 현종에 대한 평가다. 최충은 현종 시절에도 조정에 있었고 이후 문종 때까지 조정의 신하로 일했다.

다음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제현의 평가다. 이제현은 현종이 죽고(1031년) 200여년 뒤에 태어났다.

“(…)현종(顯宗)같은 분은 공자(孔子)가 말씀하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분’이도다.” (고려사)
“(…)이 때문에 군자는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워질 것을 생각하고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끝을 처음과 같이 삼감으로써 하늘의 아름다운 도리에 응답한다. 현종과 같은 경우가 이른바 ‘나는 비판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로구나.” (고려사절요)
한국방송(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배우 김동준).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조선시대 평가: “덕을 갖춘 군주”

‘고려사’는 조선 문종 1년(1451년) 편찬됐다. 조선 전기 문신인 김종서, 정인지 등이 편찬을 끝내고 당시 이들이 임금에게 올린 글에 현종에 대한 평가가 담겨있다.

“(…)그러나 목종이 왕위에서 실각하자 국운이 거의 기울 뻔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현종이 중흥의 공을 이루니 나라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문종이 태평한 정치를 여니 인민과 만물이 함께 평화를 누렸습니다.”(고려사)

임진왜란 당시 선위(임금이 왕위를 물려줌)하겠다는 선조를 말리며 영의정 유성룡 등 신하들이 현종을 언급하는데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엿볼 수 있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화를 당하여 나주로 파천하였는데, 사책에 이르기를 ‘경도(京都)의 공사(公私)의 집이 탕연(蕩然)히 모두 비었다’ 하였으니, 그 화가 오늘날의 왜적의 화보다 못하지 않았으나 현종은 마침내 난을 다스리고 정도(正道)로 복귀하여 구적(寇賊)을 몰아 내고 구물(舊物)을 회복하여 당대에 태평을 이루어 고려의 성주(盛主)가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선조 26년(1593년))

“(…)고려 현종은 거란의 화를 만나 도성이 함락되어 남쪽으로 파천하였지만, 마침내 모든 현인들을 거두어 모아 적분(賊氛)을 숙청하고는 고려조의 훌륭한 덕을 갖춘 군주가 되었습니다.”(조선왕조실록 선조 27년(1594년))
한국방송(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중 현종(배우 김동준).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드라마 속 현종 낙마, 역사에 없다…“중흥의 군주”

현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다시 일어나게 한다’는 뜻인 ‘중흥’과 닿아있다. 그는 거란의 거듭된 침략을 막아내고, 전쟁 이후에는 고려 경제와 백성들의 민생을 개선하는데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다. 호족들이 지배하는 지역에 관료를 파견해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대장경 제작 등 종교·문화 정책에도 힘을 썼다고 한다.

드라마 속 현종의 낙마는 기록에 없다. 지방행정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선 지방 호족과의 갈등도 드라마처럼 심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 원정왕후가 현종이 낙마한 뒤 국정에 개입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그린 내용이다. 드라마는 초반 강감찬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현종의 부족한 모습을 부각했지만, 이후에는 실제 역사 속 성군의 모습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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