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뮤지컬이라 부르지 못하는 할리우드의 속사정

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2024. 1. 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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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사진='퀸카로 살아남는 법' 2024년판 예고편 영상 캡처 

20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이 개봉 이후 흥미로운 화제를 일으켰다. 이 영화는  2004년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화란 의미다. 두 영화 모두 배우 티나 페이가 작가로 참여했지만, 새로운 '퀸카로 살아 남는 법'은 엄연히 뮤지컬 영화다. 그러나 개봉일 이전까지 마케팅 팀은 뮤지컬 장르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고, 예고편에도 노래와 춤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엄마가 봤던 영화와는 다르다"고 강조하며 MZ세대의 문화를 적극 반영한 이 리메이크 영화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여왕벌의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뮤지컬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관객들이 충격을 받았다며 소셜 미디어에 성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 충격 영상 포스팅 사태는 논란이 되기보다 영화에 화제성을 더하는 트렌드가 되었다. 무엇보다 레지나 조지 역을 맡은 르네 랩의 퍼포먼스 실력이 회자가 되면서 새로운 슈퍼 스타의 탄생을 예감케 만들었다. 이에 고무된 배급사는 흥행 성공과 함께 실제 영화 삽입곡이 배경으로 깔리는 최종 예고편을 공개했다. 왜 뮤지컬임을 밝히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마케팅 팀은 "뮤지컬을 언급해서 잠재적 고객을 막지 않고, 모든 관객이 동등하게 신나하길 바랐다"고 홍보 전략을 밝혔다. 배급사 파라마운트는 전체 관객의 75퍼센트가 티켓 구매 전부터 이 영화가 뮤지컬임을 알고 있었고 전체 관객 중 16퍼센트 만이 뮤지컬 장르임을 알고 실망했다는 자체 조사 데이터를 공유했다. 

흥미롭게도, 미국 극장가에서 뮤지컬 영화가 흥하는 가운데 정작 영화사는 '뮤지컬을 뮤지컬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례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웡카',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웡카'도 예고편만 보면 뮤지컬인지 아닌지 불분명했다. 티모시 살라메가 메리 포핀스처럼 하늘을 날고 특이한 퍼포먼스를 하는 듯했으나, 과거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접한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직접 노래를 부르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웡카' 시리즈에서 움파룸파가 노동요처럼 부르는 노래가 등장하지만 뮤지컬은 아니었다. 감독 또한 '웡카'를 두고 "노래가 나오는 영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아니, 대체 왜 뮤지컬을 뮤지컬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인가?

작년 말에 미국에서 개봉된 '컬러 퍼플' 또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고전 영화가 아니라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다. 무려 주인공이 뮤지션 판타지아였고 뮤지컬에서 연기한 배우를 여럿 캐스팅 했지만 뮤지컬 영화로 홍보되지 않았다. 

뮤지컬 영화 '칼라 퍼플'.

이제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팬데믹 이전 할리우드에선 뮤지컬 붐이 일었다. 2000년대 '오페라의 유령', '렌트', '맘마 미아!', '드림걸즈', '시카고' 등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영화화 붐이 지나간 뒤,  2013년 '레미제라블'이 전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올랐고, 2016년 '라라랜드'가 성공하며 뮤지컬 영화에 대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유명 배우들이 고양이 분장을 하고 나왔던 '캣츠' 영화가 전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팬데믹 이후 '인 더 하이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디어 에반 한센' 등의 뮤지컬 영화가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시나브로 '뮤지컬'은 할리우드의 금기 단어가 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있는 디즈니를 들 수 있겠다.  

영화 전체를 뮤지컬로 만들지는 대신, 발리우드 영화처럼 뮤지컬 요소를 넣어서 흥을 돋우는 경우는 점점 대세가 되어간다 일례로 '바비'는 뮤지컬은 아니었지만 영화만을 위해 만들어진 'Just Ken' 등의 곡을 배우들이 직접 부르면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배우 박서준이 잠깐 나와 안타까웠던 '더 마블스'의 얀 왕자가 사는 행성은 모든 이가 뮤지컬처럼 대화하는 곳이었다.(이 코믹한 설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연출이 여전히 안타깝다) 인기 팝송을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트롤'은 만들어질 때마다 흥하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 '킬링 로맨스'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런 미국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바비',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편 뮤지컬 영화에 대한 열정이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은 OTT다. 넷플릭스의 '틱, 틱, …붐!'과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아네트', 애플TV플러스의 '크리스마스 스피릿' 등은 자체 플랫폼의 인기 영화들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뮤지컬 코미디 애니메이션 '레오'로 스트리밍 홈런을 쳤다. 

요는 이렇다. 할리우드에서 뮤지컬 요소는 분명히 트렌드이지만, 뮤지컬을 마케팅적으로 부각하는 대신 깜짝 선물처럼 공개하고 있다. 올해 11월 '위키드'의 전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감독이 SNS에서 공개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미지를 제외하곤 어떤 뉴스도 공식적으로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웡카'와 '컬러 퍼플',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북미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2024년, 영화 '캣츠'의 저주가 사그라들고 '위키드'가 뮤지컬 영화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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