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서 사람 보내 준다”… 도 넘는 ‘윤심’ 마케팅

김건호 2024. 1. 2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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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출신 총선 예비후보들 옥석 가리기 필요

“2월이 되면 대통령실에서 사람을 보내 준다고 하더라고요.”

다가오는 총선에서 TK(대구·경북) 지역 예비후보로 등록한 한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인사는 연일 윤석열 대통령과 친분을 자랑하기 바쁘다. 최근 그의 캠프에 다녀온 한 지역 정가 인사는 “‘2월이 되면 대통령실에서 사람을 보내 준다’, ‘윤 대통령에 낙점을 받아 내려왔다’, ‘상대 후보를 자신의 후원회장으로 영입하게 (윤석열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등 이야기를 캠프 관계자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 한 시의원은 “플랜카드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역에 내려온 줄 알았다”며 “대통령실 출신 인사라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대통령 이야기만 하니 사람들이 피로해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뉴스1
이런 행태는 비단 그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대통령실 출신들이 앞다퉈 총선에 나오면서 지역에선 ‘윤심’ 마케팅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과 친분이 아니라 후보자의 능력과 미래를 보고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대통령실 출신 예비후보들의 공통된 선거 슬로건은 바로 지역이 키우고 대통령이 선택한 후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선거사무소 외벽에 걸어두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이런 후보들을 바라보는 시민들 시선은 양분된다.

경북지역 정가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으면 아무래도 예산 반영 등 대통령실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선 분명 이점이 있을 것 같다”며 “다만 너도나도 윤 대통령 이름을 팔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모두의 친구냐’는 지역 민주당 인사들 비아냥까지 들린다”고 말했다. 경북 지역 한 더불어민주당 원외 당협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이름을 파는 게 전략인 것은 알지만 선을 넘는 후보들이 많다”며 “자신의 경쟁력이 오로지 대통령과 친분뿐인 후보들이 선택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친 대통령실 참모 출신은 16일 기준 총 28명이다. 수석급에선 강승규 전 시민사회수석(충남 홍성군·예산군),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경북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등 2명이, 비서관급에선 서승우 전 자치행정비서관(청주시 청원), 전광삼 전 시민소통비서관(대구 북갑),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경북 구미시 을),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경북 구미시 을), 김대남 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경기 용인 갑)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행정관급에선 21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김보현(부속실/김포 갑) △김기흥(인천 연수을) △신재경(총무비서관실/인천 남동을) △이창진(시민사회수석실/부산 연제) △권오현(공직기강비서관실/서울 중·성동갑) △여명(시민사회수석실/서울 동대문갑) △김성용(시민사회수석실/서울 송파병) △김인규(정무수석실/부산 서·동구) △김유진(시민사회수석실/부산 진을) △정호윤(공직기강비서관실/부산 사하을) △성은경(시민사회수석실/대구 서) △전지현(홍보수석실/경기 구리시) △허청회(정무수석실/포천시 가평군) △이동석(뉴미디어행정관실 /충북 충주) △최지우(법률비서관실/충북 제천시·단양군) △이부형(시민사회수석실/경북 포항시 북) △신진영(시민사회수석실/천안병) △이병훈(정무수석실/경북 포항시남·울릉군) △김찬영(법률비서관실/경북 구미시 갑) △조지연(국정기획수석실/경북 경산시) △배철순(정무수석실/경남 창원시 의창) 등이다. 향후 추가로 등록할 이들까지 합하면 대통령실 참모 출신 후보자들은 40여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전경. 연합뉴스
대통령실 비서실 443명의 직원 중 행정관이 약 200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행정관 10명 중 1명은 예비후보로 등록했단 이야기가 된다. 특히 이 인사들 중 공천이 곧 당선인 TK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인사들에 대해선 ‘양지만 찾아다닌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윤심을 내건 대통령실 인사들이 필요한 곳은 험지인 수도권이다. 현역 의원에 비해 나이가 젊은, 40대 초중반의 행정관 출신 인사들은 수도권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 험지인 수도권으로 출마하는 전 행정관은 손에 꼽는다. 여명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서울 동대문갑에서 4선 안규백 민주당 의원과 승부를 기다리고 있고, 권오현 전 공직비서관실 행정관은 3선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있는 서울 중·성동갑에, 이승환 전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3선 박홍근 의원의 서울 중랑을에 도전하는 정도다.

이들을 바라보는 현역의원이나 예비후보의 마음은 편치 않다. 대구 지역 한 현역의원은 “대통령실 출신 중 분명 능력 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인재도 있다. 하지만 지역 현안과 정책에 대한 고민 없이 대통령실 출신이라는 것만 내세우다 보니 지역에 내려와 ‘(윤석열 대통령에게) 낙점을 받았다’는 등 유언비어가 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지역의 한 현역 의원도 “지난 문재인 정부 때도 대통령실 출신들이 대거 총선에 도전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대통령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원협의회 사무실로 하루에도 몇번씩 유언비어를 들었다는 전화가 온다”고 토로했다.

특히 대통령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청도 지역에 출마를 선언한 한 대통령실 출신 예비후보는 “단순히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역 민원과 현안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부서에서 근무했는지, 대통령실 근무뿐만 아니라 당내 경험과 국회 및 부처 경험 등 실제 지역 내 현안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며 “최근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도 일부 자격이 부족한 대통령 출신 인사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국정기획 파트에서 일정 등을 수행했던 인사들이 과연 지역 현안 해결에 필요한 능력이 갖췄는지 의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각에선 도를 넘는 윤석열 대통령 마케팅에 대해 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에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최근 일부 대통령실 출신 예비후보 캠프에서 유언비어가 나왔다는 현역 의원들이나 당원협의회의 이야기가 있었다”며 “총선 승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총선에 해악이 되는 도를 넘는 예비후보들의 발언이나 유언비어에 대해선 철저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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