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전시·운영·소장’ 효율성 최우선… 지속가능한 K-미술 이끌것”
열린소통으로 조직유연성 제고
“모두 배제하고 효율성만 볼 것”
소장품 예산 20% 해외에 투자
이건희컬렉션 후 기증문화 확산
기증자에 적절한 보상 보장돼야
‘극사실조각 대가’ 론 뮤익 등
내년 국내외 거장展 대거 준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미술관장이라면 ‘보데’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어요. 감사하게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전하게 된 거죠.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 미술관을 맡은 만큼, 보데 같은 관장이 돼보려 해요.” 독일 베를린을 가르는 슈프레강에 우뚝 선 슈프레섬은 세계적인 박물관이 모인 미술 애호가들의 성지다. ‘뮤지엄 섬’이라 불리는 이곳엔 미술관장인 빌헬름 폰 보데의 이름을 딴 ‘보데 박물관’이 있다. 미술사가이자 행정가인 보데는 젊은 큐레이터와 연구자를 육성하고, 여러 사업가들을 설득해 작품을 구매한 후 미술관이 소장할 수 있도록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이 예술 강국으로 자부심을 갖는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지난 19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울관에서 만난 김성희 관장은 3년의 임기를 관통하는 비전을 묻자 긴말 없이 “보데 같은 미술관장을 꿈꾼다”고 밝혔다. 군더더기 없는 답변엔 한국미술의 기틀을 잡는 국가대표 연구기관인 동시에 알찬 전시로 지속가능한 K-미술을 이끌겠단 뜻이 명징하게 담겼다. 지난해 9월 전임 관장의 중도퇴임으로 리더십을 잃고 표류하던 국현의 신임 관장으로 취임한 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다가 4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내며 “업무를 익히고 현안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나름의 확신이 읽혔다.
김 관장이 두문불출하며 찾은 답은 ‘효율’이다. 그는 “미국 보스턴미술관부터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장까지 문을 두드릴 만큼 국현의 위상이 높아졌다”면서도 “앞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시·연구·소장 3대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술관 운영이 기민하지 못했단 것이다. 대표적인 게 내부갑질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경직된 조직문화로, 김 관장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확립해 갈등의 씨앗부터 없애기로 했다. 그는 “소통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에 따라 어떻게 부서나 업무 간의 벽을 허물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한국 미술이론을 근간으로 전시가 이뤄진다는 큰 목표 아래 언제든지 빠르게 헤쳐 모여 협력하는 조직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 조직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걸 배제하고 오직 효율성만 볼 것”이라고 했다.
내부소통부터 다잡은 건 이유가 있다. 효율적인 조직에서 알찬 연구와 전시가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김 관장은 특히 연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바탕 태풍으로 그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글로벌 음악주류가 된 방탄소년단(BTS)을 가른 결정적 요소가 K-팝의 미학적 완성에서 나왔다고 본 김 관장은 “미국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전시 하나 수출하고, 작가 한 명 발탁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한국 미술사와 미술이론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그 근간을 국현에서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김 관장은 글로벌 미술계가 주목하는 1960∼1970년대 실험미술뿐 아니라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 미술의 흐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온 담론을 적극적인 해외 교류로 세계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론이 뒷받침되면 소장품 수집도 달라진다. 김 관장은 그간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세부사조들과 미술사를 조명하는 이론연구를 토대로 체계적인 소장품 수집에도 나설 방침이다. 해외 유수 미술기관들과 비교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미술품 구입예산의 해법으로 효율적인 수집을 고른 것이다. 김 관장은 “숫자만 채우기보단 한 점을 사더라도 부족한 점을 메꾸는 걸작을 사야 한다”면서 “총 구입예산의 20%는 해외미술품에 투자하자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런 이유”라고 했다. 해외 미술기관처럼 기업후원과 기증도 독려할 계획이다. 김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 이후 기증문의가 상당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병규 작가의 경우, 이건희컬렉션으로 5점이 기증되면서 유족이 추가로 13점을 기증했다. 김 관장은 “평생 모은 귀한 작품을 기증하는 만큼 이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며 “오는 5월에 기증작품을 조명하는 전시를 연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질 높은 전시다. 미술 대중화 바람이 불며 젊은 관람객들의 유입이 급증한 만큼, 이들을 만족시킬 전시를 선보이는 게 가장 큰 과제다. 김 관장의 이런 의중이 반영된 내년 전시에선 국내외에서 주목할 만한 전시들이 선보여질 예정이다. 김 관장은 “국민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전시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우리 미술사조를 언급하는 대규모 그룹전과 한국미술 원로를 조명하는 큰 전시와 함께 해외 거장전으론 내년 초 극사실 조각의 대가 론 뮤익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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