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서 멜로 주인공으로… 할리우드 한국남 ‘신분 상승’

이정우 기자 2024. 1. 2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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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연·유태오 등 미국 영화판서 존재감
‘성난사람들’ 로 수상 스티븐 연
아시아남 전형적 캐릭터 탈피
‘패스트 라이브즈’ 주연 유태오
백인에 뒤처지지 않는 남성성
K-팝 인기 타고 매력 부각돼
“K가 붙은 것은 다 섹시하다”

#장면1.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로 골든글로브·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석권한 배우 스티븐 연.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편견과 수치심은 아주 외로운 것이지만, 동정과 은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고 강조했다.

#장면2.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유태오. 그는 지난해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동아시아 배우로서 무협이나 코미디 같은 장르에 기대지 않고,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감격해 했다.

할리우드에서 한국 남성의 위상이 ‘격상’됐다. 넓게 보면 아시아 남성의 위상 변화다. 너드(nerd)이거나 악당, 지질한 소시민으로 기껏해야 주인공 친구에 그쳤던 동양인 남성들이 이제 로맨스 주역으로, 서사의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뿌리 깊은 동양계 남성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백인 남성과 동일 선상에서 캐릭터를 맡는 것은 ‘반짝 효과’가 아닌 ‘시대적 흐름’이자 ‘새로운 일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티븐 연은 아시아 남성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배우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남자 배우가 두각을 드러내려면 무술을 하거나 웃겨야 한다는 건 오랫동안 불문율이었다. 배우 리샤오룽(李小龍·이소룡)이나 청룽(成龍·성룡), 영화 ‘행오버’나 시리즈 ‘커뮤니티’ 등에서 괴짜 역을 도맡은 코미디언 켄 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에 비해 스티븐 연은 할리우드가 아시아 남성 배우에게 요구하는 전형성을 탈피하는 선택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내한했을 때 “선배들의 선례는 자극이 되지만 장애도 됐다”며 “그것을 부수면서 나아갔던 과정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피자 배달 점원이었던 그는 말단 사원(‘메이햄’)을 거쳐 이제는 영화사 사장(‘놉’)으로 ‘신분 상승’했다. ‘미나리’로 한국계 배우로선 사상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하차했지만 마블 영화에 히어로 역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스티븐 연은 할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로 곧 전 세계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주목받고 있는 유태오의 위상 변화는 보다 극적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 간 나영(그레타 리)이 초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해성(유태오)과 20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하며 현재와 과거, 미래를 관통하는 ‘인연’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해성과 잠재적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나영의 현재 남편 역의 미국 배우가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평범한 인상이라 유태오의 남성성이 오히려 부각된다. 영화 ‘캡틴 마블’에 배우 박서준이 출연했던 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분량은 짧았지만, 주인공 캡틴 마블(브리 라슨)의 전 연인이자 한 행성의 왕자란 그의 신분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앞서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는 2018년 스릴러 영화 ‘서치’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주류 스릴러 영화의 주연을 맡은 최초의 아시아계 배우로 기록됐다.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후속편까지 나왔다. 존 조는 시대적 변화에 대해 “우리 세대 이전엔 TV나 영화에서 아시안 배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과거에 외로움을 느꼈다는 게 이미 지난 일이라고 느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을 포함해 서구 사회 전체에 불어닥친 다양성의 요구, 아시아계 소비자 파워의 약진, 일본·중국 이야기와 달리 상대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한국 이야기의 새로움에 K-팝의 세계적 인기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빌보드를 강타한 방탄소년단(BTS) 등을 보면서 ‘아시아 남성은 멋지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분석이다. 포브스는 영화 ‘기생충’ 등으로 K-콘텐츠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2019년 “한국은 지난 10년간 K-팝, K-드라마, 한국 영화의 수출로 인해 인기와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K가 붙은 것은 섹시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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