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할 결심, 대화할 결심 [한겨레 프리즘]

권혁철 기자 2024. 1.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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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추석 연휴이자 국군의 날인 2023년 10월1일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 상승전망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혁철│통일외교팀장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얼마 전 만난 한 선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게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은 호기심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였다. 올해 퇴직하는 선배는 귀농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농사지을 곳은 접경지역이라 서울보다 북한이 훨씬 가깝다. 요즘 북한이 전쟁을 입에 올리면서 그의 귀농 계획도 흔들리고 있었다.

새해 들어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력한 보복 의지를 보여줘 전쟁 자체를 막겠다는 데 초점을 둔 ‘응징적 억제’ 메시지다.

국가 위기관리의 중점을 응징적 억제에 둘 경우 도발 예방 효과는 높지만, 만약 북한이 도발할 경우엔 위기 초기부터 확전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북한 처지에선 일단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대량보복을 당할 것이 확실하므로 확전을 자제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초반부터 전면적인 공격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8일(현지시각) 온라인판에 “윤 대통령이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남침에 관한 김정은 위원장의 거친 말보다 그런 과잉 반응으로 전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한 게 이런 배경이다.

오는 3월 한·미 연합훈련이 고비다. 해마다 3월 중하순에 하는 이 훈련을 두고 북한은 “훈련을 가장한 북침 연습”이라고 반발해왔다. 팀스피릿이 이 훈련의 전신이다. 1993년 10월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과 면담한 게리 애커먼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그(김 주석)가 팀스피릿을 거론할 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전했다.

비슷한 경우가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가을 유럽에서도 있었다. 1983년 11월2일 미국과 나토가 벨기에 등에서 훈련(에이블 아처 83)을 시작하자, 세계는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

연례 훈련인데도 그해 훈련에 소련이 극도로 긴장했던 이유는 달라진 훈련 내용과 악화한 정세 때문이었다. 1983년 9월 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과 나토는 재래전, 화학전, 핵전쟁 등 발생 가능한 모든 전쟁 형태를 연습했다. 핵 공격이 가능한 B-52 폭격기, 중거리 핵미사일 등이 처음으로 훈련에 참가했다. 앞서 1983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한 공개연설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불렀다.

이랬던 레이건은 ‘우리 훈련 때 소련이 선제 핵공격 당할 공포를 느꼈다’는 중앙정보국(CIA) 보고를 받고 그해 11월18일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볼 때 소련은 공격당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여기 그 누구도 그런 행동(선제공격)을 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이야기해줘야만 한다.” 레이건은 1984년 1월 연설에서 “우리가 다른 체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화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핵무기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전 이후 대북 강경대응론이 거세던 2010년 12월 존 A. 맥도널드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부장(미 육군 소장)이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인은 정치적 타협(외교)이 불가능할 때 나서는 사람들이다. 군인은 전장에 가는 마지막 사람(선택)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 선택을 처음부터 유일한 선택처럼 말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막고 설사 충돌이 일어나도 확전되지 않도록 하는, 한반도의 위기관리 최종 책임자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는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였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힘에 의한 평화’의 원조 격이다. 윤 대통령이 이것뿐만 아니라 ‘악의 제국’ 소련과 대화에 나선 레이건의 용기도 배웠으면 좋겠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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