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걸림돌` 상속세에 제약바이오 경쟁력 `흔들`
상속세 비용 커 지분 매각 고려도
"사업 지속 위해선 대안 마련해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상속세 문제로 수년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주요 제약사 오너 2·3세가 경영 일선에 나서는 세대교체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상속 관련 문제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과 부광약품에서 불거진 상속세 이슈는 세대교체를 앞둔 제약바이오 기업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로, 지배구조 불안으로 인해 국내 산업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업 승계를 앞둔 제약사들은 상속세 50%를 내고 나면 지분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동안 상속 전 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3년 일동제약은 투자사업부문(일동홀딩스)과 의약품사업부문(일동제약)을 분리하고 투자 사업부문인 일동홀딩스를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동아제약도 지주회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와 전문의약품을 담당하는 동아ST, 박카스를 포함한 일반의약품 사업부 동아제약으로 분할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최대주주가 보유한 자회사 주식과 교환하기도 했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상속 대상 기업의 규모를 줄일 수 있어 상속에 앞서 이 방법을 많이 썼다.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후계자에게 지주사 지분을 몰아주면, 자연스럽게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결정권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사 주가가 높은 경우 지주사 체제 전환에 큰 비용이 들다 보니 지분 매각까지 고려한다. 앞서 2022년 OCI홀딩스는 상속세 납부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광약품의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10.9%(774만7934주)를 1461억원에 매입했다. 부광약품의 경우 창업주 김동연 회장이 이전부터 윤리 경영을 강조해온 만큼 지주사 전환보다 공정한 방식으로 증여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여가 이뤄진 2018년, 김동연 회장이 증여세를 투명하게 납부하기 위해 5년 연부연납을 신청하고 대부분 금융권의 대출을 통해 장기적으로 갚아나갈 계획이라는 입장도 밝히기도 했다. 증여한 주식은 당시 시가로 약 1170억원에 달하고 예상되는 증여세액도 약 700억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어서 업계에서도 주목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증여 당시 주가가 3배이상 올랐을 때였는데, 당시 김 회장은 회사의 성장에 자신이 있어 지주사 설립이나 일감몰아주기 등 편법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여받은 자녀들이 수년간 꾸준히 지분을 매도한 가운데, OCI홀딩스가 부광약품 지분을 인수하면서 부광약품은 OCI홀딩스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최근 한미약품도 상속세 재원마련을 위해 OCI와 그룹간 통합을 결정했다. 앞서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5400억원의 상속세를 안게된 오너일가는 3년간 분할 납부를 해왔지만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MG새마을금고가 주요 출자자인 사모 펀드 '라데팡스 파트너스'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유동성 위기로 새마을금고가 출자 결정을 보류하면서 매각이 사실상 불발됐다. 이후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가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7703억원에 취득하고,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은 OCI 홀딩스 지분을 10.4% 인수하는 지분 맞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상속세 재원 마련과 기업의 지배구조 안정성 확보를 동시에 하기 위한 결정이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대표적인 제약사가 상속세 이슈로 지배구조에 근본적 변화와 내홍을 빚게 됐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현재 한미약품과 OCI 통합 과정에서 소외된 고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자의 큰아들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통합 취소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다.
부광약품, 한미약품 외에도 향후 적지 않은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상속세 이슈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올 초 JP모건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사실상 후계자로 꼽히는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와 나란히 무대에 섰다. 셀트리온의 경영권 승계 향방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 회장은 지난해 10월 그룹 합병 발표 자리에서 "상속·증여세로 못해도 6조~7조원은 내야 할 것이기에 승계할 방법이 없다. 내가 떠나고 나면 상속세 때문에 어차피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 대부분이 창업주 시대의 막을 내리고 오너 2·3세가 경영하고 있는데 지배구조가 복잡하고,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곳이 많다"며 "보령, 광동제약 등도 상속세라는 걸림돌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고 하는 데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상속세 완화를 시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 토론회에서 "소액 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다"면서 "재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 기업이 가업을 승계한다든가 이런 경우에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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