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의 꿈 '귀촌·귀농'…시골집·논밭 '선투자' 신중해야[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2024. 1. 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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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추수풍경 /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은 누구나 한 번쯤 귀촌·귀농을 꿈꿀 것이다. 귀촌과 귀농은 전원이나 시골로 주거지를 옮겨 사는 것은 같지만 느낌부터 매우 다르다. 귀촌은 전원생활의 낭만과 여유로움의 공간이지만 귀농은 농약을 뿌리고 추수를 해야 하는 팍팍한 생활인의 영역이다. 귀농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업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귀농은 영농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농업 비즈니스의 일환이다. 현행 농지법상 농업인은 여러 규정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1000㎡(약 303평) 이상의 논밭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다. 1000㎡ 미만의 텃밭을 가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귀농이 아니라 귀촌에 해당해 귀농인에게 주어지는 각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귀촌·귀농은 그동안 낯익은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일이다. 귀촌·귀농을 ‘사회적 이민’이나 ‘제2의 이민’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귀촌·귀농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치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실패로 이어진다. 단순히 도시 생활의 염증으로, 전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귀촌·귀농을 선택할 경우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짐을 싸기에 십상이다.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는 시골 텃세 갈등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농촌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을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된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가 없으면 전원생활은 즐거움은커녕 고역이 될 것이다.

요즘 귀촌·귀농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귀농보다 귀촌을 선택한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귀촌인은 42만1106명으로 귀농인 1만2660명의 34배에 달한다. 주변 지인들을 봐도 대도시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 이후 귀농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농사를 업으로 창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귀농에서 성공하려면 될 수 있으면 젊어서 도전하고, 적어도 5년간 착실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귀농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까지 농사일을 거들었던 시골 출신의 A에게도 귀농은 여전히 낯설다. 아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서다. 귀촌은 어떤가. 하루아침에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귀촌행 역시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귀촌은 주소만 시골로 옮기는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적 관계에서 큰 변화를 뒤따르기 마련이다. 집만 멋지게 짓는다고 귀촌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귀촌을 선택하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농사 외에 어떤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한 설문 조사를 보니 귀농‧귀촌을 포기한 이유로 가족 지인과 관계 단절, 병원 등 의료문제, 문화생활 저하 외에도 경제적인 문제를 꼽았다. 그래서인가. 대기업에서 퇴직한 서울 출신의 홍성규씨(가명·68)는 “대학 친구 중 귀촌·귀농을 선택한 사람들이 5%가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귀농을 시도하지만 쓰라린 실패를 맛본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은 무조건 부동산 매입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해당 지자체 주최의 한 달 살이, 1년 살이 등의 농촌 프로그램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부동산은 한번 사면 공산품처럼 반품이 되지 않는다. 서둘러 논밭을 매입하거나 집을 덜컥 짓지 않고 노는 땅이나 빈집을 빌려 써본 뒤 결정하는 게 현명하다. 철저히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귀농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실패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일종의 완충장치를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골 생활 적응에 실패, 벗어나고 싶어도 이미 사들인 부동산의 매몰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더 심해지면 시골 부동산은 팔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귀촌을 하든, 귀농을 하든 유형자산에 선투자하는 것은 신중한 게 좋다. 특히 내 것이 있어야 성공적인 귀농이 될 것이라는 선입관부터 버려라. 고추를 내 밭에 심으면 풍작이 되고, 남의 밭에 심으면 흉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들이면 작황은 같을 게 아닌가.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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