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월요일 퇴근 때면 직장인 러너들이 남산에 모인다
트레일러닝 모임에 가다
이것은 약 두 달 전 이야기다. 두 달 전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이유는 그동안 매우 바빴기 때문이다. 써야지, 써야지 했다가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산에 가서 자전거를 타다가 갈비뼈가 두 개나 부러졌고, 그래서 나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등산 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달 등산시렁은 '갈비뼈 다친 사람이 산에 못 가서 슬퍼한 이야기'로 채우려 했는데, 이 슬픔 속에 자꾸만 두 달 전 이야기가 불쑥 불쑥 솟아났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이야기를 여기에 쓸 수밖에 없었다.
두 달 전 나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뭔가 새로운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다음, 다시 본격적으로 달리기 훈련에 돌입하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엄청나게 고무적인 분위기를 품고 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한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 참고로 나는 친구가 얼마 없다. 참여하는 모임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조차 잘 나가지 않아 거기서 잘리기 직전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모임이든 잘 참석하지 않는 '프로 불참러'다. 그런데 이 모임은 이상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친구 김민수에게 전화했다.
"민수야 안녕, 너 이번 주 꼬뮨 드 서울Commune De Seoul에 갈 거냐?"
민수가 대답했다.
"응, 갈 거야. 너 가려고?"
"응, 가고 싶어. 나 좀 데리고 가 줘."
"그래, 월요일에 봐."
꼬뮨 드 서울은 트레일러닝 모임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열댓 명이 모여서 서울의 여러 트레일러닝 코스를 달린다. 쉽게 말해 월요일 밤마다 산에서 달리기를 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이태우, 이신명 부부가 운영한다. 부부는 월요일이 지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주르륵 올린다. 나는 그 사진들에 매혹됐다. 어두운 밤 헤드랜턴을 켠 무리들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달리는 포즈를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영토 확장의 임무를 부여 받은 로마의 군인들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뽑힌 엘리트들만 모여 있는 분위기! 무료로 거기에 끼어 나도 당당한 척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그런데 민수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말이지, 트레일러닝계의 웰컴 드링크 같은 곳이랄까? 아무튼 그런 곳이야."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그들의 근사한 사진 속에 내가 껴있기만 해도 되니까.
월요일이 됐다. 나는 러닝복을 챙겨서 출근했다.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가방을 챙겨서 6호선 버티고개 역으로 갔다. 모이는 장소가 특이했다. 이태우, 이신명 부부의 집 앞으로 오라고 했다. 민수에게 궁금한 걸 물어봤다.
"갈아입은 옷은 어디에 맡기지?"
민수가 대답했다.
"아, 그 친구들 집 주차장에 세워진 자가용 트렁크에 넣으면 돼."
수많은 옷 가방으로 가득 찬 부부의 차가 생각났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겼다. 옷 가방에 누군가 폭탄을 숨겨놨으면 어쩌려고? 옷 가방에 누군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빈대가 있으면 어쩌려고? 차 트렁크가 낯선 사람들의 이상한 냄새로 꽉 차면 어쩌려고?! 부부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심한 운영진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또 웃겼다.
나와 민수는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모르는 사람들 스무 명 정도가 부부의 집 앞에 한 줄로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무뚝뚝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차 트렁크에 옷 가방을 넣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멀뚱히 서 있는데, 운영자 이태우가 말했다.
"자, 준비됐죠? 가시죠!"
그가 뛰어나가자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준비운동을 한다거나 코스 설명을 한다거나, 새로 온 사람 소개를 하는 등의 시간은 일절 없었다. 박력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맨 꼴찌로 나섰다.
곧바로 오르막이 나왔다. 누군가 매봉산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헉헉댔다. 오르막이 나와도 멈추지 않고 그들은 계속 뛰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쫓아갔다.
"헉, 헉!"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을 때 평평한 곳이 나왔다. 마침 모두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민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 떼놓고 가지마."
민수는 알겠다고 했는데,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자 나를 멀리 떼어놨다. 제기랄! 나는 또 열불 나게 쫓아갔다. 다시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정자가 나왔다. 모두 정자 위에 올라가 있었다. 여기서 이태우가 나와서 말했다.
"자, 사진 찍을게요!" "찰칵!"
딱 한방 찍고 그는 다시 달려나갔다.
"좀 천천히 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입으로 뱉을 수 없었다. 내 앞에 어떤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 즈음 평지가 나왔다.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꼴찌로 온 나에게 '파이팅'이라거나 '힘내라'는 응원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차라리 나았다. 나는 어두워서 내 얼굴이 잘 안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달리기가 시작됐다. 테니스장을 지나 반얀트리 호텔을 지났다. 이윽고 남산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였다.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멈춰 있길 바랐는데, 금방 초록불로 바뀌었다. '아, 씨!'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오르막을 달려서 올라갔다. '와, 씨!!' 그들은 남산까지 계속 이렇게 달렸다. 이윽고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고 남산까지 아주 가파른 길을 또 올라갔다. 그 끝에서야 사람들이 꼴찌로 올라온 나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요!"
박수까지 쳤다. "짝짝짝"
나는 민수에게 말했다.
"이게 웰컴 드링크라고? 토 나오는 웰컴 드링크를 주는 데가 어디 있어?"
민수가 말했다.
"어, 그게, 여기 오는 사람들 실력이 그 새 늘었나봐!"
남산에서 내려와 다시 이태우, 이신명 부부의 집 앞에 도착해서야 달리기는 끝났다. 사람들은 집에 가지 않고 꾸물댔다. 이태우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자, 저 이제 집에 들어가서 피자 먹어야 하니까, 얼른 돌아가세요!"
사람들은 그제야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어 들고 돌아갔다.
다음은 꼬뮨 드 서울의 운영자 이태우와의 일문일답이다.
지금 하는 일과 소속, 직책이 뭐죠?
굿러너컴퍼니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습니다. 레이스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고, 굿러너의 러닝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꼬뮨 드 서울은 언제 생겼죠?
2019년 하반기 처음 영감을 얻고,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꼬뮨 드 서울은 왜 만들었나요?
기존에 있던 러닝 크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만날 때와 헤어질 때의 인사도 최소화하고 달리기 전후 스트레칭도 모두 하지 않고, '달리기' 그 자체 외의 모든 요소들을 덜어내고 싶었어요. 러닝 크루들이 그들의 세션에서 하는 것들을 최대한 덜어내고 싶었어요. 모임의 소개도 코스 소개도 각자 소개도 전혀 하지 않아요. 사실 '사교와 친목'도 최대한 절제하려고 하고 있지만, 자주 만나다 보니 생기는 유대감은 피할 수 없긴 합니다. 뭔가 구분이 불명확하긴 하지만, 꼬뮨 드 서울은 크루가 아닙니다. 커뮤니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커뮤니티 안에서 달리는 분들은 각자 다른 크루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느 크루의 아무개다"보다는 "나는 러너 아무개다"로 모든 러너가 소개되는 것을 지향합니다.
처음엔 로드러닝으로 시작했지만, 저와 제 와이프가 트레일러닝에 빠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야간 트레일러닝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서울 중심부에 가볍게 달릴 수 있는 트레일러닝 코스들을 만들게 됐죠. 왠지 모르게 트레일러닝이라 하면 장거리일 것 같고, 힘들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서울 도심에서 짧게는 7km에서 길게는 11km 정도 퇴근 후에도 가볍게 즐길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꽤 오랜 시간 둘이서 달렸는데, 꾸준히 달리다 보니 하나 둘 문의가 들어오더니, 지금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참가자들 모두 아는 사람인가요? 뒤처지거나 낙오한 사람 혹은 달리다가 부상당한 사람이 생겼을 경우 어떻게 챙기죠?
간혹 지인들을 데려오는 분들이 있어요. 가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대부분 아는 분들이죠. 여기서 처음 만난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특정 오르막의 끝 지점에서 가장 후미의 사람들을 기다려줘요. 그리고 화이팅을 다같이 외쳐줍니다. 뒤처져도 전혀 문제될 것 없어요. 그리고 결코 낙오를 시키지 않습니다. 주로 야간에 산을 뛰기 때문에 부상을 입는 분들도 가끔 있기는 해요. 그러면 알아서 처음 시작한 곳으로 오라고 얘기하거나, 부상 정도가 심한 사람이 생기면, 길을 아는 사람이 함께 내려갑니다.
마라톤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달리기는 2015년 여름에 처음 시작했어요. 당시 마케팅 대행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러닝에 관련된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그리고 러닝 입문 1년 반 정도 지난 2016년에 첫 마라톤을 춘천마라톤에서 완주했어요. 그리고 지난주 춘천마라톤 완주가 16번째 완주였고, 이제 돌아오는 일요일 17번째 마라톤 레이스에 참가합니다.
달리기가 좋은 이유가 뭐죠?
제 아내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얘기하곤 해요. 아마도 달리면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달리기가 좋은 이유는 이거다!"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달리면서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 달리면서 만나게 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감정과 땀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에너지가 달리기가 좋은 이유입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뭐죠?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르는데요. 첫째, 달리기를 좋아했던 사람, 지금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아주 많아요.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꾸준한 사람은 생각보다 찾기 어려워요. 저는 언제나 한결같이 꾸준한 러너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달리기에 대한 저의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그것이 그들의 러닝에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꼬뮨 드 서울은 또 한편으론 나라는 사람과 그리고 이신명이라는 사람의 진정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플랫폼이기도 하고요.
둘째, 지금 꼬뮨 드 서울엔 저와 같은 진정성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이 모여 있어요. '적당히 재미삼아', '남들이 재밌다니까 나도 한 번'이 아닌 정말 달리기를 진정성 있게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작지만 강한 커뮤니티예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꼬뮨 드 서울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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