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열탕 부동산]①뜸했던 '강남 분양' 쏟아지는 이유
상한제·재초환에 밀린 사업 앞다퉈 일정 잡아
1·10대책에 수요 부풀면…고분양가·공급과잉?
행인의 외투를 벗기기 위한 해와 바람의 싸움. 바람이 몰아칠수록 오히려 옷깃을 여미던 행인은 따뜻한 햇살이 들자 마침내 외투를 벗었습니다. 부동산 정책과 시장이 딱 그렇습니다. 시장은 정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왔죠. 규제 완화 선물세트인 1·10대책은 시장의 숨을 터줄까요? 아니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올까요?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에 따른 시장 움직임을 되짚어 앞으로의 시장 반향을 조망해 봅니다. [편집자]
한동안 꽉 막혔던 강남권 분양이 올해 확 풀린다.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 중심 정책에 분양 시기를 미뤘던 단지들이 줄줄이 고개를 든 것이다. 정부는 연초 1·10대책(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으로 규제를 더 풀어내면서 주택시장에 활기를 주려 하고 있다.
분양을 비롯한 주택시장은 마냥 장밋빛일까? 도심 내 정비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 향후 아파트 공급 시기가 몰릴 수도 있다. 시장에 괜한 기대감을 키우면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은 지방에는 공급과잉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급한 규제 완화에 시장을 옥죌 때와는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양가 잡으려다 공급 다 태웠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재건축·재개발 분양 예정 아파트는 전국 14만7185가구로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다 물량으로 집계됐다. 수도권이 8만8862가구로 지방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중에서도 절반은 서울(4만5359가구)에서 풀린다.
특히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서만 1만8792가구가 쏟아진다. 총 16개 단지다. 이는 최근 5년간(2020~2024년) 강남3구 연간 분양 물량 중 최대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보면 최초 청약일 기준으로 2020~2023년 동안 강남3구에서 분양한 단지는 단 8곳(총 5745가구)뿐이다.
2017년 이후 집값 상승세에 속도가 붙자 정부는 규제 중심의 정책을 잇달아 내놔다. 그 영향으로 정비사업 단지들은 분양 시점을 미뤄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1월 기준)은 2017년 5억2316만원, 2018년 6억3080만원, 2019년 7억8619만원 등 눈에 띄게 올랐다.
정부는 실수요자 위주로 주택 마련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등의 취지로 분양가 규제에 나섰다. 2019년 8·2대책을 통해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확대 적용하고, 같은 해 12·16대책에선 상한제 지역을 무더기로 지정한 게 대표적이다.
아울러 집값 영향이 큰 재건축은 2018년부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부활해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보유세·양도세 등 각종 세금 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미실현 이익까지 환수하겠다는 규제가 더해진 것이다. 재건축 단지 조합원들이 손을 맞잡고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9년 12월 재초환이 '합헌' 판결이 나자 부담금 공포는 더욱 커졌다. 정비사업 단지들 중에선 가구당 재초환 부담금 예정액이 수억원에 달하지만, 분양가상한제로 일반분양가를 충분히 올리지 못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구르는 단지가 다수 있었다.
특히 강남권의 경우 단지에 고급 설계를 적용하느라 공사비를 많이 들인 만큼 분양가도 높여 받아야 했는데, 상한제가 걸림돌이 됐다. 이에 시장 상황을 보면서 분양 시기를 타진하다가 일정이 밀렸거나 분양가를 올리기 위해 후분양으로 선회하는 단지 사례가 속속 나타났다.
결과는 급격한 공급 위축이었다. 2020년 강남3구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총 1490가구에 불과했다. 아파트는 총 6곳이었으나 모두 42~489가구 수준의 작은 단지뿐이었다. 2021년엔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2990가구) 홀로 바통을 이어받은 뒤 긴 가뭄기를 보내다가 2023년 말 송파구 '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문정'(1265가구) 단 한 곳만 시장에 나왔다.
2022년부터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매수 심리가 떨어지며 집값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탓도 있다.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나올 정도로 분양 시장에 한파가 불자 분양 예정 단지들의 '눈치보기'도 길어졌다. 이렇게 분양을 미뤄 온 단지들이 2024년에야 출격 준비에 나선 것이다.
올해 분양 예정인 △서초구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641가구)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잠실진주·2678가구) △서초구 디에이치방배(방배5구역·3065가구) △강남구 청담르엘(청담삼익·1261가구) 등이 분양가 문제로 공급을 연기해 왔던 단지다.
강남뿐만 아니라 비강남권과 수도권 등에서도 분양을 연기했던 단지들이 하나 둘 출격한다. 이로써 오래 기다려 온 청약 대기자들도 드디어 청약 통장을 꺼낼 수 있게 됐다. 실수요자가 더 저렴한 가격한 집을 살 수 있도록 분양가를 규제했지만 오히려 공급이 막히면서 기다림만 커졌던 셈이다.
더군다나 2023년에서 넘어온 물량은 분양 지연이 보편화된 데다 일부 단지들은 공급 시점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라 연내 계획 물량이 다 소화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정비사업은 주택 노후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게 정상인데, 집값을 잡기 위해 과한 규제를 하는 바람이 공급 변동성이 커졌다"며 "분양이 귀해지면 희소성 때문에 고분양가에도 청약이 과열돼 실수요자 입장에선 부담이 더 높아지는 셈"이라고 짚었다.
이젠 다 풀어?…공급 쏠림·과잉 우려도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할 무렵부터 투자자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 역시 '규제 완화'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자 청약 대기자들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3대책에 따라 규제 지역에서 대부분 해제되면서 분양가 책정 부담이 낮아진 데다, 올해 공급규제 완화 및 수요 진작책이 담긴 1·10대책이 정비사업 추진 속도를 높여줄 전망이라서다.▷관련기사:재건축 '안전진단' 대못 뺀다(2024년1월10일)
현재 상한제를 적용하는 투기지역은 강남3구와 용산 등 4곳뿐이다. 이 외 지역은 자유롭게 분양가 책정이 가능해졌다. 서울 광진구 옛 한강호텔 부지에 짓는 '포제스 한강'이 최근 분양가를 3.3㎡(1평)당 1억1500만원으로 책정해 아파트 사상 최고가를 쓴 배경이기도 하다.
아울러 1·10대책은 재건축 사업의 '대못'으로 꼽히는 안전진단 문턱을 대폭 낮추고 재초환 부담금 추가 완화, 재개발 사업 동의 요건 완화 등을 예고했다. 이로써 재개발·재건축 사업성이 높아져 정비사업을 통한 도심 내 주택 공급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감이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완화가 오히려 시장 변동성만 더 키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뜩이나 인건비, 자재비 인상 등으로 공사비가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분양가 규제까지 느슨해져 이미 신규주택 가격 책정에 고삐가 풀렸기 때문이다.
상한제 적용 지역인 서초구에서 분양한 아파트를 보면 2020년만 해도 민간택지까지 확대된 상한제가 처음 적용돼 분양한 '서초자이르네'의 평당 분양가가 3252만원으로 전용 59㎡가 7억원대였다. 그러나 2021년 분양한 '래미안원베일리'는 평당 5653만원으로 당시 분양 최고가를 기록했다.
원베일리의 분양가는 전용 59㎡ 기준 12억6500만~14억2500만원으로, 단지 규모와 위치 등을 감안해도 같은 자치구 내 분양가가 1년 만에 최고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다. 이에 더해 2024년 분양 예정인 메이플자이는 평당 6705만원에 책정돼 59㎡가 17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강북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한제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그간 미뤄졌던 정비사업 아파트들이 속속 일반분양에 나선 가운데, 일부 단지는 평당 분양가가 4000만원을 넘어 '국민평형'(전용 84㎡) 10억원을 훌쩍 넘겼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분양가격은 평당 3495만원으로 전년 대비 17.36% 올랐다. 전국 민간 아파트 분양가격도 평당 1736만원으로 10년간 두 배 올랐다.
분양가 부담이 커질수록 지방 분양시장의 온도는 점점 더 싸늘해지고 있다. 2023년 들어 미분양 주택이 전국적으로 감소세에 들어섰지만 광주, 강원, 전남 등 지방은 여전히 해소가 안 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는 여전히 미분양 주택이 1만가구가 넘는다(지난해 11월 기준).
이런 상황에서 규제 완화 등으로 공급 분위기가 형성된다 한들 분양가 부담을 줄이지 못하면 지방 미분양이 늘수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사업 조달비용에 쫒긴 밀어내기 물량이 늘면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집값 하락 국면에서 분양가가 높아지는 것은 수요자가 신축보다 기축 주택으로 선회하는 요인이 된다"며 "이렇게 되면 지방 등 시장이 경색돼 있는 지역 사업일수록 청약수요를 모으지 못해 미분양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도권의 경우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만큼 정비사업만 원활히 진행된다면 시장 회생에 긍정적인 영향도 기대된다. 그러나 도심 내 정비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 이주 수요 급증으로 인한 전세시장 불안이라는 부작용이 예견된다.
윤 위원은 "1·10대책 이후 재건축 재개발을 검토하는 단지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사업성이 높은 대규모 단지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의 추진 속도가 비슷해 이주나 입주 시기가 맞물리면 시장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꼼꼼한 후속조치 역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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