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경기는 원정’은 옛말…K컬처가 한국 축구 팬덤 확장 이끈다[박효재의 도하 메일]

박효재 기자 2024. 1. 22. 0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팀을 응원한다는 인도네시아인 유딕(왼쪽)과 아내, 아이들. 도하|박효재 기자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드라마, K팝도 사랑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한국 팀을 응원하러 왔다.”

인도네시아 출신 유딕은 아내, 어린아이들을 이끌고 한국과 요르단의 2023 아시안컵 조별리그 경기가 열린 카타르 도하의 앗수마마 스타디움을 찾았다. 왜 한국을 응원하느냐는 질문에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답변을 쏟아냈다.

한국 팀을 응원하러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을 찾은 사람들. 도하|박효재 기자

보통 중동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는 원정 경기나 다름없다고 한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한국을 응원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홈 경기 분위기까진 아니더라도 한국 대표팀으로선 덜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한국 축구에 빠져들게 된 계기에 K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있다.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해 스포츠로 팬덤이 확장되는 모양새다.

옆에 있던 아이들과 아내까지 이구동성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손흥민(토트넘)이다. 한국 팀이 3-0으로 이긴다. 손흥민이 2골 넣고, 나머지 골은 누가 넣어도 상관없다”며 웃었다.

한국 팀을 응원한다는 필리핀인 로드릭(왼쪽)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 도하|박효재 기자

필리핀인 로드릭도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만든 건 한국 드라마다. 로드릭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관심이 생겼고, 게임을 좋아하는데 아이들과 같이 축구 게임을 즐기면서 한국 팀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며 웃었다.

한국 대표팀을 응원한다는 카타르 고등학생 파티마 이파트. 도하|박효재 기자

앞서 지난 15일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전에도 한국을 응원하러 온 외국인 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18살 카타르 고등학생 파티마 이파트는 “2018년부터 K팝부터 시작해 한국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됐다”며 한국을 응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덕분에 한국 축구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등 번호 9번 조규성이다. 가나전에서 열정적으로 뛰던 모습, 그의 에너지가 좋다”며 웃었다. 파티마는 대학에서 국제 경영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싶다면서 “마지막 시험 결과에 따라서 한국 대학에 지원할 수도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K팝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의 대중가요가 쉴 새 없이 경기장 안팎에서 울려 퍼졌고,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이들도 많았다. 바레인전이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다가 중동 국가 출신으로 보이는 한 유튜버에게 붙잡혀 “한국에서 BTS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 “한국 문화의 장단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의 인기 대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도하|박효재 기자

한국에 우호적인 카타르의 분위기는 특이한 인구 구성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에는 카타르인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천연가스, 석유 등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자국민들에게는 풍부한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하고 건설 노동자, 각종 서비스업 등 기피 업종은 외국인 노동력에 많이 의지한다. 인도인이 전체 인구의 약 21.8%로 차지해 카타르인(10.5%)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지리적·문화적으로 중동보다는 동북아 국가들과 가까운 필리핀 국적 비율도 7.3%나 된다.

실제로 경기장 주변에서 필리핀 출신 노동자로 한국을 응원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며 6년 넘게 가족과 함께 카타르에 살고 있다는 로드릭은 “나는 동남아 국가 사람이다. 아무래도 요르단보다는 한국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이제 한국 대표팀이 우승 후보다운 경기력으로 이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

도하 |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